
주·우쉽 글, 그림 페어합작
그 일이 있기 1달 전, 내가 어스에게 간 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고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웃음 지어지는 날씨였다. 인간들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공원에 나와 소풍을 즐기거나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그 인간들처럼 같은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스를 찾았다.
“어스!”
항상 내가 이름을 부르면 기분 좋게 바라봐 주는 어스를 향해 소리쳤다.
“놀자! 지금 괜찮지?”
“나, 이 꽃 알아! 백일초 맞지? 어스가 알려줬던 건 다 기억하려고 하고 있어!”
내가 그렇게 말하면 어스는 항상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거나 가만히 웃어주었다. 나는 그 모습이 좋아 그가 알려주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떠올리고 대답했다. 그리고 가끔은 지구에 있는 인간들처럼 꽃을 사 들고 가려고도 했다. ‘선물’이라는 개념은 내게 아직 어려웠던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인간들 틈에 섞여 꽃집에 찾아가서는 다짜고짜 선물로 줄 꽃을 내놓으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바이올렛이라는 꽃을 어스에게 선물했다.
“어스 그거 알아? 바이올렛 꽃말은 영원한 우정이랬어! 내가 맞췄지?”
어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좋았다. 사실은 꽃을 가져온 인간한테 다른 꽃말도 들었지만 말하기엔 조금 부끄러워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어스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지 않을까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어스는 나와는 달리 눈치도 좋고 똑똑했으니까.
그 이후로는 어스가 나에게 꽃 이름을 알려줄 때 꽃말도 같이 알려주었다. 외울 게 많아져 조금 괴롭긴 했지만, 어스와 놀 수 있다면 좋아! 뭐든지 할 수 있다.
어스와 놀지 않을 땐 그냥 누워서 그냥…. 그냥 누워서 어스랑 무얼 하고 놀지 상상한다. 예전엔 카이퍼대나 돌아다니며 따분함을 채우려 했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어스랑 뭐 할지 생각하는 일이 더 재밌다. 그럴 때면 카론은 옆에서 지구정복 안하냐는 소리를 해댄다 해도 나는 그냥 싫다고만 얘기하고 그냥….
어스와 놀지 않을 땐 ‘그냥’이라는 단어가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 다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부정의 의미는 아니었다. 예전이라면 무조건 재미없고 따분한! 그런 단어였겠지만 상상하고 있을 땐 그렇게 싫은 단어는 아니었다. 만약 어스가 없다면 이란 상상으로 넘어가면 끔찍해졌지만.
“어스한테 다녀올게!”
지구정복 안 할 거면 가지 말라는 카론을 뿌리치고 어스에게 갔다. 난 어스에게 갔는데 왜 태양계 놈들이 한자리에 있었던 건지 지금 생각해도 그건 정말 싫었다. 하루 일정이 다 망했잖아! 한 명이 보이지 않았지만, 상황도 모르던 나에겐 신경 쓸 일이 아니지! 라고 생각하고 어스를 빼내 놀러 갈 계획이었다. 내가 손목을 붙잡고 끌고 나가려던 순간 어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다른 놈들도 나한테 무슨 소리를 했었지만 어스 말이 아니니 별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하긴 그 녀석들 말보다는 어스가 나랑 놀러 가주지 않는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잖아! 어스는 내가 놀자고 하면 항상 놀아줬고 갑자기 이제 와서 놀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나는 지구 침략도 하지 않고…. 그리고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있다고!
내가 왜냐고 난리를 쳤었는지 그냥 멍하니 바라봤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단지 어스는 솔라가 폭주했고 나에게 폭주한 그를 막으러 갈 거라는 얘기만 해주었다. 그리고 항성이 폭주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었다. 보고 난 후의 나는 어스에게 소리쳤다.
“저 자식은 이미 폭주 상태잖아! 막으면 너도 죽는데 왜 막으려 하는 거야?”
“막아도 안 막아도 죽잖아….”
“막아도 난 곧 소멸해.”
“그러니 이왕이면, 좀 더 오래 사는 쪽을 살리는 게 아프고, 곧 소멸하던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왜 하필이면 어스야? 어스 말고 다른 녀석들도 많잖아! 너희도 솔라를 막을 수 있는데 왜 안 해? 아픈 애보다는 건강한 애가 싸우는 게 맞지 않으냐고!

나는 그 기분 나쁜 공간에서 난리를 피웠다는 이유로 다시 내 집으로 쫓겨났고, 다른 행성들이 어스 근처에 다가가지 못하게 감시했다. 내 즐거운 계획이 망쳐진 것만으로도 좋지 않은데 친구 목숨조차 못 구하게 한다는 것은 정말 무슨 말을 해도 표현되지 않을 감정이었다. 나는 카론과 함께 어찌어찌하여 어스를 찾으러 지구로 돌아갔다.
내가 어스를 만약 조금이라도 일찍 찾았다면 어스 대신에 내가 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카론은 “그만 돌아가자” 라고 얘기했지만 어떻게 돌아가? 왜 아무도 어스를 도와주지 않는 거야. 어스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다른 녀석들도 좋아했는데, 그리고 어스는 내 친구란 말이야….
왜 내 친구를 죽게만 내버려두는 거야.
나는 어스에게 다가가 “내가 도와줄게.”라던지 “왜 죽어야만 해야 하는 거야?” 라는 말들을 내뱉었던 것 같다. 죽어가는 어스를 바라보며 어떤 표정을 지었지? 울었나?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나?
어스는 그런 내 손을 잡아주었다. 어스 힘은 원래부터 약했다고 느꼈지만, 그때 내 손위로 올려진 어스의 손은 더욱 힘없이 올려져 있었다. 그런 손을 보며 나는 더욱이 다른 행성들에게 화가 날 뿐이었다. 그리고 날 보고 있던 어스는 약속 하나를 하자고 말했다.
“약속이야, 알았지? 살생은 하지 않기로.”
그다음 말 같은 건 없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껴안고 그냥…. 그냥 그렇게 있었다. 고통스레 죽어간 친구 옆에는 백일초가 예쁘게 피어있었다.
“어스…. 나 너랑 더 잘 놀려고…. 다른 꽃말들도 알아왔는데….”
“백일초 꽃말도 알아. 떠나간 친구를 그리워하다래! 너무 재밌지 않아? 내가 말하면 웃어줘 제발. 응?”
죽은 친구가 어떻게 대답하겠냐만은 그때 나는 계속 어스한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꽃과 꽃말들을 다 얘기했다. 한 시간? 몇 시간?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행성들이 결과가 궁금했는지 찾아왔다.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었지만 살생은 하지 말라는 어스와의 약속 때문에 할 수 없었다. 결국, 싸우려다가 하지도 못하고 행성들에 의해 다시 내 집으로 쫓겨났다. 그 후 다시 태양계에 갔었을 땐 예상대로 그곳엔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다. 다른 행성이나 사람이나…. 물론 살아있는 것들은 있었겠지만 제일 중요한 사람이 없었다……. 슬프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