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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쓸 때 들은 음악

길티크라운 ost

release my soul

 

디모 수록곡

fluquor

 

 

 

퇴고 할 때 들은 음악

길티크라운 ost 죄인(罪人)

  잊혀 진 별. 이제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별은 조용히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사라진 행성에서 살았던 어느 생명체는 그 별을“명왕성”이라는 죽음을 뜻하는 별이라고 불렀다.촤악, 무언가를 가르는 소리가 우주 속에 울려 퍼졌다. 세로로 반듯하게 갈라져 버린 검은 신체 사이로 빛나는 붉은 눈동자에는 죽음만이 담겨져 있을 뿐 이었다. 극심한 고통으로 신음 소리 하나 내지 못한 채, 털썩 주저앉은 가여운 이를 남자는 그 어떠한 자비심도 보이지 않은 채 천천히 짓밟았다. 짓밟은 육체 사이로 희미하게 반짝이는 갈색의 핵을 손가락을 집었다. 그대로 커다란 핵을 삼킨 후 눈을 감으며 조심스럽게 가슴을 쓸었다. 천천히 목을 따라 자신에게 흡수되는 하나의 생명의 온기를 느꼈다. 남자, 명왕성의 주인은 숨을 크게 들이쉬다가 내쉬며 눈을 뜨고 주위를 바라보았다. 주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의 주위에 남은 것은 언제나 허망한 우주와 죽음 뿐 이었다. 남자는 숨을 깊게 들이 쉬었다가 천천히 내뱉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남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다가 한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남자는 깃털 없는 날개를 펄럭이며 언제부터인가 팔짱을 끼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명왕성의 주인을 향해 생기 없는 눈동자로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입 꼬리만 살짝 올린 채 말했다. "그가 널 찾고 있어, 변함없이 오늘도 울고 있어." 그리고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명왕성의 주인을 한 참 동안 바라보다가 어느 곳으로 사라졌다. 명왕성의 주인 역시 남자가 서 있던 자리를 한 참 동안 바라보다가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플루토 ”


  The heavy rains come

  아름다운 음색도, 화려한 기교도 담겨 있지 않은 미숙한 목소리의 어중정한 노래가 들려왔다. 노래는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타고 명왕성의 주인에게 까지 닿았다. 그가 부르는 노래에는 무엇인가 담겨져 있어 듣는 이의 두 눈을 감게 만들었다. 노래에 담겨 있는 알 수 없는 무언가는 대해 명왕성의 주인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무언가를 먼 훗날부터 그가 언제나 품고 있는 것 이었다. 명왕성의 주인은 천천히 발걸음을 내밀었다. 따뜻한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명왕성의 주인이 다다른 곳은 지구였다. 지구. 아니, 그 행성은 아직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명왕성의 주인은 그 행성을 지구라고 불렀다

 

  “안녕!”

 

  사뿐히 초록빛의 풀밭을 밟자, 낭랑한 목소리가 명왕성의 주인 귓가에 울려 퍼졌다. 한 남자가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가시처럼 삐죽삐죽한 푸르른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새하얀 이를 드러낸 채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그의 머리에 둘려져 있는 흰 구름 오색찬란한 오로라로 변해 있었다. 오로라는 그는 지금 우주제일로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구라고 불리는 행성의 주인은 명왕성의 주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왔구나!"

  "네가 오지 않으면 시끄러우니까"

 

명왕성의 주인의 무심한 말에 아름다운 꽃이 지는 듯 지구의 주인의 얼굴에 피어 있었던 미소는 사라지고, 그의 구름은 어느 새 먹구름이 되어 옅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지구는 죄 지은 사람 마냥 고개를 푹 숙인 채 애꿎은 손가락만 꼼지락 꼼지락 만지며, 푸른색과 초록색의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명왕성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지구는 작은 입술을 조심스럽게 열며 명왕성에게 말했다.

 

  "…화났어?"

  "화나지 않았어, 귀찮을 뿐 이야"

 

  명왕성은 무뚝뚝하게 말하며 지구와 눈을 마주치지지 않았다. 아니 지구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그의 사정을 어리고 천진난만한 지구는 알 수 없었기에 그에게 불쑥 얼굴을 내밀고 그의 손을 잡으며 환하게 웃었다. 지구는 명왕성이 자신으로 인해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도 기분을 차린 듯 했다. 아직 주눅 들었지만, 조금은 당당한 목소리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있잖아…오늘도 이것저것 보여주고 싶은데 그래도 돼?"

  "…"

 

  지구는 항상 명왕성이 찾아오면 자신의 별이 가지고 있는 보물을 명왕성에게 보여주었다. 그가 보여주는 것들은 언제나 달랐다. 언제는 바다, 언제는 사막, 언제는 지구의 우주를. 명왕성은 언제나 말없이 지구의 손에 이끌려 그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언제나 지구가 보여준 풍경들에 대해 느낌도, 생각도 무엇도 말하지 않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명왕성으로 되돌아갈 뿐 이었다.

명왕성이 또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자 지구는 또 다시 자신으로 인해 그의 기분이 상하지 않았나. 하는 걱정과 두려움에 두 팔을 버둥버둥 흔들며 그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가‥강요하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만 저번에 심해에 아주 예쁜 물고기를 발견했고, 그리고 밤하늘이 아주 예쁜 곳을 발견 했거든, 보여주고 싶었어."

 

  될 리가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구는 명왕성에게 보여주고 싶은 경치를 말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깊은 바다 속에서 발견한 보랏빛 비늘의 아름다운 물고기, 얼음으로 가득 한 바다 위에서 본 또 다른 우주. 그가 말해주는 경치들은 하나 같이 우주에서 볼 수 없고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없는 경이로운 경치들이었다. 그러나 명왕성은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듯 생기 없는 눈동자로 한껏 들뜬 지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구는 경치를 상상하며 들뜬 기분으로 이야기하다가 명왕성의 변함없는 차가운 표정을 눈치 채자,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명왕성을 향해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역‥역시 귀찮지?"

  "그것 뿐 이면, 난 이제 갈게"

 

  명왕성은 그의 손을 천천히 놓고, 보란 듯이 색색의 꽃을 미련 없이 짓밟으며 그의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자리에 서 있는 지구를 바라보았다. 색색의 꽃을 미련 없이 밟고 온 길 너머에 있는 그를 미련이 담긴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지구는 당연히 그 사실을 몰랐고, 그저 다시 명왕성이 다시 돌아봐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쁜 듯 손을 흔들었다. 그의 구름은 다시 색색의 무지갯빛 오로라로 변해 있었다.

 

  "자…잘 가!"

  "나중에 또 꼭 보자!"

 

  "어스"

 

  명왕성이 가지고 있는 이름은 어스였다. 동시에 그 이름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찬란한 골디락스 행성의 이름이었다.

  터벅, 터벅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던 어스는 다시 뒤 돌아, 골디락스 행성을 바라보았다. 허망한 우주에 푸르게 빛나는 별. 어스는 언젠가 저 별처럼 푸르고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던 경치를 자신의 품에 담은 적이 있었다. 모든 추억이 그렇듯이, 그 추억은 그 어떤 시절보다도 행복하면서 그 무엇보다도 비극적이었다.

 

  한 때, 태양계라고 불리던 작은 우주가 있었고, 어스는 태양계의 보석. 골디락스 행성이었다. 그는 생명을 위해 살고, 생명을 위해 희생하는 자였다. 지금과 달리 그의 곁에는 많은 형제와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과 함께 언제는 웃음으로, 언제는 슬픔으로, 언제는 행복으로 가득했던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에겐 한 친구가 있었다. 외로움에 익숙했던 죽음. 모든 이가 두려워하는 자였지만 어스의 앞에서 만큼은 꽃처럼 순수하고 웃음을 잃지 않았던 자였다. 어스는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고, 많은 것들을 보여주었다. 그만큼 그는 어스와 지구를 좋아하며 그의 곁에 있었다. 비록 어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길 때도 있었지만, 그는 그 상처를 언제나 보듬어주고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그는 어스의 가장 소중했던 친구였다.

  무엇인가 어스를 괴롭게 한 것일까? 과거를 떠올리던 어스는 갑작스럽게 입술을 깨물며, 자신의 밑에 피어 있는 색색의 꽃을 짓밟았다. 그의 발에 짓밟힌 꽃은 그의 힘에 의하여 바스라지고 흩어져 버렸다. 익숙하지 않아 집어 삼켜질 뻔 했던 죽음의 힘은 어느 새 어스의 것이 되어, 어스의 손아래에 그 만을 위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나 손에 묻혀 지는 죽음의 흔적은 익숙하지 않았다. 어스는 떨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스의 몸이 겨울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 기억해, 아주 똑바로 기억해. 그 날은 기적과 절망이 공존했던 그날, 나의 형제들은 끝을 향해 걸어갔고, 형제의 아이들은 시작을 향해 걸어갔던 그날, 나는 그와 영원히 헤어졌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간 것은 내가 아니라…"

 

  Still I miss days with you

 

  I can't look into your face

  Oh Feeling blue and looking back again

 

  Please come back to me

  "그였다는 것을"

  그가 먼 여행을 떠난 날은 태양이 죽었던 날이었다. 그 날은 겨울 인 듯 몹시도 추웠다. 팽창해가며 사라져 가는 태양계에 조용히 휘날리는 검은 재가 문득 겨울에 내리는 새하얀 눈처럼 보였다. 어스는 우주에 겨울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일 것 이라고,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는 경치는 마지막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형제들은 모두 죽었고, 형제의 아이들은 저 너머 은하로 또 다른 시작을 향해 떠났다. 죽음은 혼자 남은 어스의 몸을 천천히 갉아 먹고 있었다. 어스는 죽음을 맞이하며 의외로 괴로움이나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죽음을 받아들이며 이곳에 오기까지의 걸음을 떠올렸다. 태어났을 때, 골디락스의 행성으로 선택 받았을 때, 첫 번째 생명을 안았을 때, 형제의 아이들을 만났을 때, 그리고 자신의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어스"

 

  다정한 목소리가 어스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안개가 낀 듯 흐릿한 시선을 옮겨 목소리의 정체를 바라보았다. 친구, 그였다. 어스의 앞에 친구가 검붉은 눈물을 흘리며 앉아있었다. 너구나, 희미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눈이 되어 사라져 가는 어스의 손을 잡고 흐느꼈다. 미안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 할 수 없었다. 어스는 천천히 그를 향해 웃었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그는 천천히 입을 열어, 겨우 그에게 말했다. 정말?, 그가 울먹임을 토해내며 말했다. 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당연히도 거짓말이었지만, 그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고, 그의 눈물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기 때문인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이었다. 시간은 흐르며 죽음이 어스를 데려가기 직전, 그는 어스의 손을 잡았다. 흐려지는 의식 속 느껴진 따뜻함에 어스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스에게 천천히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그의 붉은 심장, 핵이었다. 사라져 가는 태양계에 홀로이 빛나는 붉은 핵. 그 모습을 어스는 꼭 타버린 초원 위로 홀로이 피어난 붉은 꽃처럼 느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스는 그의 행동을 알 수 없었다. 이미 죽음은 누군가를 데려가는 것을 결심했고, 그 두 명은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세차게 내리는 검은 눈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옮겨 어스를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눈동자에 담겨 있는 것은 단호하고 강한 결심이었다. 그는 조용히 어스에게 속삭였다.

 

  “될지 모르지만…그래도 이 방법 밖에 떠오르지 않아.”

 

  그리고 그의 심장에 자신의 핵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누구도 그가 희생을 할 줄 몰랐다. 그의 앞에서 만큼은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던 그가 그를 위해 희생할 줄 누구도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스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가 검은 눈이 되어 사라져가며 어스의 안으로 그의 감정, 그의 기억, 그의 시간, 그의 삶이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기적, 누군가에게는 어스는 팔을 뻗어 사라져 가는 그를 잡았다.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선택을 했고, 죽음은 그의 선택을 받아들여 그를 데려가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던 어스의 머릿속에 녹음기처럼 한 단어만 울려 퍼졌다. 가지 마! 투명한 눈물이 흘리며 어스는 그의 옷자락을 잡고 몇 백 번이나 부탁했다. 그는 웃으며 어스에게 말했다.

 

  "--, -- ---- --- -- --- ---"

 

  차갑고 차가운 겨울. 이별과 너무나도 어울렸던 그 날의 우주. 떠나가야 했던 이는 그 곳에 남았고, 남아야했던 이는 대신 그리움으로 이루어진 여행을 떠났다. 누군가 있었다. 라는 흔적도 없는 자리에서, 어스는 하염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뿐 이었다. 그 겨울 날 이 후 더 이상 어디에도 상냥했고, 자비로웠던 골디락스의 어스는 없었다. 이제 이곳에 서 있는 것 어스는 죽음으로써 자비 없고,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묶여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였다. 수천 년간 느낀 그의 삶은 외로움. 이것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던 위성들은 그를 당연하게도 어스는 그가 아니라며 따르지 않았고, 어스가 그를 만나기 전보다 더 오래전부터 그와 함께했던 오르쿠스는 그에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수 천년동안 어스를 괴롭힌 것은 어스 자신이었다. 어스의 목을 조르는 죄책감은 언제나 슬픔을 토해냈게 만들었고, 억지로 이어 받은 자신의 것이 아닌 인생은 혐오감을 느꼈다. 이것들은 내가 아니라 네가 느꼈던 것들이어야 했는데… 라고 하며 그는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자신의 목숨을 끊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어스가 준 삶이기에 죽을 수 없었다. 그것이 어스를 희망 없는 절망의 비웃음으로 가득 찬 저 나락 끝으로 천천히 밀었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되돌아 온 한줄기의 희망. 다시 그가 나타났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가 다시 나타남으로써 자기 혐오감과 죄책감은 강해질 뿐 이었다.

 

  지구가 새하얀 장미 꽃 밭 위에 쓰려져 있는 것을 어스는 보았다. 누군가에게 칼을 맞은 듯이 툭 하고 쓰러졌다. 어스는 쓰러지는 듯이 그에게 달려가 그의 손을 잡았다.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입에 붉은 장미가 피어난 듯 피가 묻어 있었다. 깨어나, 어서. 어서. 어서. 어서 그딴 것을 보는 것은 한 번이면 충분해 그러니까 제발 더 이상 그렇게 내 곁에 떠나지 말아줘…

  우주의 겨울 속에서 검은 눈과 함께 그가 사라져가는 모습이 어스의 머릿속에 다시 그려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좋은지 그는 바보처럼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을 향해서 그는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처럼 바보처럼 그의 손을 잡고 울 뿐 이었다. 그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았다. 어느 새 깨어난 그는 웃으며 어스에게 말했다. 괜찮아, 언제나처럼 조금 어지러웠을 뿐 이야. 라고 어스는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바보처럼 웃으며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하며 그날처럼 그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어스는 주먹을 쥐었다. 살집을 파고 든 손톱에 의해 그의 손에서 붉은 피가 뚝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하얀 장미 위로 떨어진 피는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붉은 피로 태어난 하얀 장미는 붉은 장미가 아닌 붉은 상사화가 어울렸다. 지구는 어스의 손에 흐르는 피를 보고는 놀라며 어스의 손을 잡았다.

 

  "아프지 않…아?"

  "너는?"

 

  너는? 머릿속에 가득 찬 울먹임을 겨우 삼키며 어스는 그의 어깨를 힘을 주어 잡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 들어 어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파란 눈동자와 초록 눈동자에는 의구심 하나 담겨 있지 않았다. 그 눈동자는 그 날 보았던 눈동자였다. 어리석은 죽음 앞에서도 미련 없다는 듯이 웃었던 그. 그 눈동자는 결국 어스를 무너지게 만들었고, 억누르고 있던 깊은 절망은 결국 어스를 집어 삼켜버렸다. 어스는 울음을 토해내며 그에게, 그리고 또 다른 그에게 말했다.

 

  "누가, 누가 구해 달래? 누가 멋대로 살려 달래? 왜 언제나 혼자 멋대로 판단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거야?!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내가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제발, 제발 그러지 말라고 제발 그러지 말라고 몇 번 이나 말했는데!! 왜 어째서? 왜 어째서 왜 네 멋대로… 난 바라지 않았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고! 그런데 왜 어째서 그런 거야? 왜 멋대로 네가 대신 죽어서 떠나가 버린 거야?!!"

 

  왜 어째서 너는 왜 멋대로, 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입술을 피가 날듯이 깨물고, 세어 나오려고 하는 눈물을 억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줄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힘없이 팔을 떨어트렸다. 언제나 그랬다, 어스는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고통 받는 순간도 그리고 그가 죽어가는 순간도. 어스의 절망을 알 수 없는 지구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의 손을 잡았지만, 어스는 그의 손을 매섭게 쳐냈다. 천천히 그를 바라보았다. 지구는 어스의 얼굴을 바라보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스의 얼굴은 절망과 슬픔으로 뒤섞인 표정이 그의 입을 막았다. 어스는 그에게 말했다.

 

  “안녕”

 

  다시 잊혀 진 별로 돌아간 어스를 맞이한 것은 오르쿠스 였다. 오르쿠스는 어스에게 말했다. "그는 좀 어떠냐고" 어스는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말했다. "예전보다 더욱 상태가 악화 되었다." 라고 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푸르른 지구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별. 사명의 별. 그 사명을 안고서 그의 주인은 자신의 생명을 갉아 먹는 자비 없는 생명들 속에서 살아간다. 보답 없는 희생의 운명 속에서 웃으면서 살아가는 존재. 그 끝은 참혹하다. 다시 태어난 그는 운명의 장난처럼 잔혹한 운명을 안게 되었다. 자신을 구하겠다는 희생의 결과가 그 것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건넨 붉은 핵을 깨트릴 듯이 꽉 붙잡으며 오열하는 듯이 오르쿠스에게 말했다.

 

  "이제는 말해줘, 부탁이야"

 

  그래야, 나는 … 그의 곁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또 다시 기적이 일어난 날. 그가 골디락스로 다시 태어나 어스 앞으로 다시 나타난 날. 그가 어스의 검은 옷자락을 잡고 다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자신을 향해 다시 미소 짓은 그. 어스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그에게 돌아와 준 그에게 제일 먼저 한 말은 "미안해" 도 아닌 "고마워" 도 아닌 "떠날게" 라는 이별의 단어였다. 어스는 그가 자신으로 인해 사라진 이별의 순간은 어스의 마음속에 아주 큰 상처로 새겨졌다. 그 상처는 어스를 향해 비난하고, 목을 조르고 어스를 괴롭혔다 그리고 오랜 시간 끝에 그리워하던 그를 다시 만난 순간, 상처는 더더욱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어스는 자신으로 인해 또 다시 그가 망가질 두려움에 휩싸였고, 더 이상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 다짐은 이별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떠나지 못했다. 언제나 무언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어스는 이제 정말로 떠나야 한다 생각했다. 더 이상 재촉 할 수 없었다. 이제는 알아야 했다 그것이 자신과 그를 위한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어리석으면서도 이기적인 마음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오르쿠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너를 살리고 싶어 했지,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고"

  “이유는 너무나도 이상 했어”

 

  오르쿠스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툭, 툭 손가락으로 의자를 치는 소리가 우주에 울려 퍼졌다. 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소리를 계속 해서 들었다.

 

  “그는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해”

  “무엇을?”

  “우주를”

 

  어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실은 이상했고 그리고 잔인했다.

  언젠가, 어스가 푸르른 별을 품에 안고 있을 때, 명왕성의 주인 이었던 그는 어스의 손을 잡고 지구 밖을 나가자고 했다. 언젠가 어떤 자와 카이퍼대를 넘어서 저 너머 우주를 한 번 다녀와 봤다고 하는 그는 어스가 자신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경치를 보여준 것처럼, 자신도 어스에게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경치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허약한 몸과 그리고 사명감이 어스의 발목을 잡아 어스는 마음대로 지구에 나갈 수 없었기에 어스는 그의 선물을 받지 않았다. 어스는 자신이 지구에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프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언젠가 사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태양계를 넘어서 드넓은 우주의 경치를 자신의 눈에 담고 싶었다. 어스는 그의 손을 잡고 "언젠가 된다면 같이 보러가자”라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언젠가, 어스라는 단 한 사람을 바라보게 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설령, 그 것이 희생일지어도. 기분 전환으로 내뱉은 거짓말은 아주 먼 미래에 하나의 기적과 절망을 만들었다.

  그는 가장 소중 한 이를 위해 기적이라도 이루어내고 싶다는 간절함과 가장 소중한 이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그의 소망은 기적을 이루어냈다. 그때의 기적의 증거, 붉은 핵의 고동 소리를 어스는 오늘도 느끼고 있었다. 어스는 떨리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는 사라져가는 손으로 어스의 손을 다시 잡았다. 검은 재가 되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어스에게 미소 지었다. 슬픔과 기적이 공존한 공간에 울려 퍼진 기억나지 않는 그의 목소리. 어스가 단 한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단 한 사람은 어스를 위해 저 너머로 떠나갔다.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진실. 한 편으로는 너무나도 잔혹한 진실을 바라보며 어스는 또 다시 절망 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어스는 낡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공허한 붉은 눈동자로 빛나는 지구 너머로 더욱 빛나는 우주를 바라보았다.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어스는 자연스럽게 우주의 경치를 눈에 담았다. 오랜 시간 끝에 사명감에서 벗어나 우주에 다가갔다. 천천히 발을 내밀어 언젠가 자신이 품었던 아이들이 별 이라고 불렀던 행성의 모습과, 자유롭게 우주 속을 여행하는 혜성들. 아름다웠다. 라는 단어로도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우주는 어스에게 지구에서 느꼈던 또 다른 두근거림을 선사했다. 공허함과 웅장함이 공존하는 우주의 아름다움은 어스에게 또 다른 기적과 절망을 선사해주었다. 모든 것은 그의 희생 덕분이었다.

  어스는 공기 가득한 헛웃음을 내뱉으며 이제는 그의 손을 잡지 못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정말 너무 이상한 이유잖아”

 

  어스의 목소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새하얀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눈물이 떨어졌다. 어스는 그가 죽은 이상한 이유를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편으로는 그답다는 생각을 했다. 눈물을 흘릴 수 록 그가 보고 싶어졌다. 바보 같은 사람, 마지막까지 소망 이라는 이기심마저 자신을 위해 희생한 바보 같은 사람. 이유를 알면 떠난다는 다짐과 다르게 이유를 알고도 어스는 이제 그의 곁에 떠날 수 없었다. 어떻게 떠날 수 있을까, 이렇게 바보 같고 멍청하면서 그리고 너무나도 안타까운 그의 곁에서.

 

  "가 봐, 그가 널 기다리고 있어"

 

  오르쿠스는 날개를 펄럭이며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갔고, 어스는 지구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어느 새 지구에 또 다른 우주가 펼쳐지고 있었다. 심해보다 더 깊은 남색의 하늘 안에서 빛나는 셀 수 없는 각 자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별들. 그 별 아래 있는 것은 언제나 그였다. 모든 것이 다르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인 그가 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도 들리는 미숙하지만 아름다운 노래.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르는 노래가 푸르른 지구 아래에서 울려 퍼졌다. 그 노래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스 한 명 뿐 이었다. 그 노래는 어스의 아이들이 불렀던 노래 중 하나이며 어스가 자주 부르는 노래였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이 담긴, 어스가 언제나 품고 있는 감정을 노래하는 노래였다.

 

  Oh I release my soul

  어스는 그의 이름을 천천히 불렀다. 그의 부름에 지구는 고개를 돌려 어스를 바라보았다. 지구는 그 무슨 말도 하지 않은 채, 재빠르게 어스의 앞으로 달려왔다. 그의 구름은 어느 새 세찬 비를 내리고 있었다.

 

  “미…미안해…미안해… 다시는 다치지 않을게, 다시는 아프지 않을게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줘"

 

  그는 투명하고 큼직한 눈물을 흘리며 그의 검은 옷자락을 잡고 하염없이 그에게 사과했다. 뭐가, 뭐가 미안 한 거야? 애절한 심장의 외침을 겨우 삼키며 어스는 그의 손을 떨리는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살아 있는 그에게 그리고 죽은 그에게 말했다.

 

  "너는 왜 나에게 경치를 보고 싶어 하는 거야?”

 

  그가 자신을 위해 어리석은 희생을 한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그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제는 떠난다. 라는 결과를 넘어서, 이상하고 어리석은 이유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지구의 주인은 울먹이며 어스의 손을 힘을 주어 잡았다. 그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푸른색과 초록색의 눈동자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눈동자의 색은 달랐지만, 그 눈동자의 빛은 처음과 변함없이 단호하고 아름다웠다. 지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어스에게 말했다.

 

  “친구니까, 내 소중한 친구니까”

 

  친구. 그 순간, 어스의 붉은 눈동자가 심장의 두근거림처럼 잠시 커지며 반짝였다. 붉은 눈동자에 웃고 있는 지구 주인의 눈물 섞인 미소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변함없는 미소, 친구라고 부르며 자신을 향해 지었던 미소.

‘아 그래, 그렇구나.’깨달은 순간 어스의 심장이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어스의 머릿속에 천천히 그와의 모든 추억이 흘려지나가기 시작했다. 추억은 슬픔과 기적이 공존한 공간에 멈추었다. 검은 눈이 되어 바스러지는 그가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다. 어스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마지막을 바라보았다. 죽어가는 태양계 속으로, 그리고 어스의 마음속으로 아주 선명하게 그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스, 다시 만난다면 그때도 나와 친구가 되어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이유의 이유, 모든 시작의 이유, 모든 끝의 이유. 자신이 잊어버린, 그리고 그 동안 그를 떠날 수 없었던 이유. "친구" 라는 인연의 이유. 어스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달빛에 빛나 반짝이며 흐르기 시작했다. 긴 시간 끝에 깨달은 이유는 아름다웠다. 어스는 손을 뻗어 그를 천천히 안았다. 수천 년이 지나서야 다시 안은 그의 품은 봄처럼 따뜻했고 바다의 품처럼 포근했다. 이제는 그를 떠날 자신이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떠날 수 없었다. 사실은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리웠다, 보고 싶었다, 말하고 싶었다, "미안해" 라고… 그의 목을 조르던 끝없는 죄책감은 그의 목을 놓아주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수천 년 동안 죄책감에 막혀있던 그의 마음이, 진실이 세어 나오기 시작했다. 슬펐고, 아팠고 그리고 기뻤다. 어스는 눈을 감으며 천천히 떠올렸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그의 모습을. 그는 변함없이 웃으며 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눈을 떠 천천히 바라보았다. 이제는 눈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그는 변함없이 웃으며 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아주 먼 길을 돌아 그의 곁으로 다시 왔다. 그는 또 다시 어스를 소중하다 말하며 다시 친구가 되어 주고 웃어주었다. 변함없이.

  그 먼 옛날처럼 불쌍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자신의 친구를 향해서. 그리고 언제나 보고 싶고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이의 이름을 불렀다.

  So you feel my song

길티크라운 Sound Track - Release My Soul - (feat. Aimee Blackschle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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