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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망요소가 있습니다.

 * 세계관은 80% 개인해석입니다.

 * 이 위 사항이 꺼려지신다면 보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덩어리진 자욱한 먼지들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가만히 있질 못하고 붕 뜬다. 그들은 맴돌아 어딘가에 또 정착한다. 이 미세한 것들도 결국은 자유롭지 못하다.이미 이곳은 부서지고 망가져 한눈에 봐도 생명체 따위 없어 보이는지 오래다. 아니, 존재하지 않는다. 눈에 뜨인 것이라곤 먼지만 그윽이 쌓인 돌바닥들과 그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널브러진 파편 조각들뿐이었다. 발걸음은 알아서 닿는 데로 그저 멍하니 내디딜 뿐, 여기 온 뚜렷한 목적도 이유도 없었다. 무슨 좋은 추억거리 하나 없는 곳인데, 마음 한편을 저릿히 만드는 살육 현장이었을 텐데, 더 자욱해지는 그늘들에 눈앞이 아릿해졌다. 시시콜콜한 회상 따위_

 

  수년 전, 이름 모를 곳이었지만 끝을 알 수 없는 고요한 심해처럼 삼켜질 듯한 공허한 공간에 자리 잡은 소행성에서 악몽이 일었다. 그 소행성은 다른 소행성들보다 비교적 크기가 꽤 큰 편이었지만 누군가 산다는 흔적조차 없었다. 마치 갓 태어난 것처럼. 새로 생긴 걸까? 버려진 걸까? 혹, 놈들의.

  시선을 도륵도륵 굴리며 호기심을 콕콕 찌르다 찰나에 뇌리에 스치는 놈 들. 실은 최근 들어 윔프들의 침략이 갈수록 늘었다. 멍청한 건지 대담한 건지 대책 없이 달려드는 것부터 노리는 급습까지 방법은 다양했다. 득달같이 달려드는 그런 녀석들을 족족 막아내는데 무리는 없었지만 왜인지 수들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되레 빈번해지는 횟수에 혀를 쯧쯧 차게 될 정도였다. 은하계 주변을 감싸듯 돌며 그들은 마치 기회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눈빛을 번뜩이고 자비는 없었다. 나날이 강해져가는 힘과 지능적으로 승부해야 하는 그 살기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마치 거듭할수록 진화하는 것처럼.

 

  아무렴 어때. 미개한 것들인걸.

 

  ...아아, 평소대로 쉬웠어야 했는데. 그때 우습게 보는 게 아니었어.

 

  _그리 생각해보려 애써도 머리와 몸은 따로 놀았다. 시시콜콜한 회상? 부정하려 들지 마. 실로는 찢어지는 고통이면서 그의 희생을 묵살하려 들지 마.

 

  이곳은 마지막으로 그와 함께 있던 장소가 되었다. 하필이면.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항상 흔들림 없는 영업 미소와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토성 주의 고리였다. 아픈 가시들을 밟으면서도 너는 여전히 웃고 있구나. 그것은 여전히 자라 너의 발목을 평생 휘감을 텐데. 자라면서 더욱 옥죌 텐데. 감히 잊히지 않도록.

  한참을 걸었을까 걸음을 문득 멈추게 했던 것은 먼지가 자욱이 쌓여 보일 듯 말듯하게 유리 판막은 없이 이제는 멈춰버린 시곗바늘, 다름 아닌 원형의 벽시계였다. 무거운 눈꺼풀을 지그시 눌러 느릿히 깜빡이고는 가만히 내려다보았지만 좀처럼 잡아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서글퍼졌는지 두려웠는지 엄습해오는 적막에 한참을 망설이며 터질 듯한 숨을 용케 고르면서, 움직일 줄 모르던 다리는 드디어 무릎이 굽어지더니 땅에 닿는다. 아무렇게나 자리 잡아 누워있던 삐딱한 시계에게로 겨우겨우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 끝이 미세히 떨렸으려나 반대로 허무하게 무너졌으려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슬픈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 가져온 시계는 다리 위에 얹힌다. 시계에 꽤 내려앉은 잿빛 투성이의 먼지 덕에 수년의 흐름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전히 느껴졌다. 또 아픈 기억이 칼이 되어 가슴을 푹푹 찌른다. 아아, 네가 차라리 환상이었다면. 꿈이었다면. 모든 게 거짓이었다면. 난 이리도 외로웠을까.

 

  너를 다시 내 곁에 둘 수만 있다면 난 거짓이어도 좋은데.

 

  제 고리의 타임슬립도 소용없다고 진작에 생각하는지 써먹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며 오히려 고이 접는다. 아마도 시도는 해 보았던 것이지. 아마도 이미 저질러진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겠지.

  고리 안에서 너를 만났지만 그것은 만난 것이 아닌 보인 것뿐이었다. 너의 형상을 한 가짜일 뿐이었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가짜를 기뻐할 리가 없잖아.

 

  그때 네 옆에 있는 또 다른 나는 지금의 나 일리가 없었고 이제는 허상 같아 일그러지고 흩어진다. 실은 과거를 꿈이라고 믿고 싶은 건지, 지금을 꿈이라고 믿고 싶은 건지 감각은 뒤죽박죽인지 오래다. 그래, 한가지 확실한 건 고리의 능력을 사용해 봤자 넌 현재가 아니었으며 나는 과거를 쫓은 게 되었다.

 

  회상이라. 어느새 무감각해진 입꼬리를 애써 끌어올리며 한숨을 작게 내쉬었는데, 체념이었던 걸까 씁쓸함만이 남아 손으로 시계에 쌓인 먼지를 쓸어내리는구나. 기억도 같이 쓸어가주면 좋으련만. 되레 밀려오듯 어렴풋이 떠오르니 다짜고짜 시계를 고쳐잡아 애꿎은 시곗바늘을 역으로 돌렸던 것 밖에는.내 능력이 무용지물인 게 싫어서, 감히 바꿔보고 싶어서, 내가 있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서. 째깍째깍, 허망일 뿐이었던 바람은 흩어져 사라지고 그저 제 갈 길 가는 시곗바늘이 야속하기만 했다.

 

  이제는 멈춰버린 녀석인데. 괜히 억지로라도 원망해본다.

 

  잃어버린 걸 찾을 때 까지만 이라며.

  달콤한 꿀이라면 거짓 속이라도 좋으니 헛된 희망아, 부디 만날 수 있다고 해줄래. 흘러내릴 눈물을 삼켜내며 시곗바늘을 천천히 돌렸다. 감정도 뒤죽박죽 갈피를 못 잡는구나.

  아아, 보고 싶지 않아. 나, 꿈속에서 살아도 좋으니. 누가 너 따위를.. 빈자리가 너무나도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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