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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이가 산을 오른 이유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올라가면 그 누구도 돌아가지 못한다는, 살아 내려온 일이 없었다는 그 산으로 올라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아이는 떨어졌다. 비죽비죽 제멋대로 솟은 갈색 머리가 추락하는 새 같은 그의 유약한 몸을 제 마음껏 휘젓고 지나갔고 오르기 전에 맺힌 것인지 떨어지며 맺힌 것인지 이슬 같은 눈물이 감긴- 감기지 않았으면 그 무엇보다 붉은 색이었을- 눈에 맺혀 있었다. 아이가 속해 있었던 세계에서 그는 떨어졌고 그대로 그 작은 우주에서 이탈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괴물과 인간의 이야기, 아마 전쟁을 했고 전쟁에서 진 괴물들은 지하 속으로 쫓겨나 그곳에서 살아갔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가 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니, 완전한 진실은 아니었을까? 진갈색 머리의 떨어져내리던 아이가 착지한 꽃들 더미에서 그가 아이의 손을 잡았다. 푸른 머리의, 그 누구보다 짙푸른 머리색의 그가 그곳에 있었다. 인상적인 남자였다. 매우 아름다운, 아름답고 어여쁜 그의 머리카락의 한 올 한 올은 마치 베틀에 하늘을 녹여 짠 것 같았고 푸른 두 눈엔 어느 사파이어도, 그 보석을 만드는 장인도 감히 따라할 수 없을 아름다움이 배어져 흘렀다. 그 둘은 상반되었다. 마치 삶과 죽음 같이. 푸른 남자가 떨어진 아이에게 그의 희고 가느다란 손을 내밀었다.

 

  "안녕?"

  "…?"

 

  아이가 붉은 두 눈을 깜박였다. 차마 숨길 수 없는 의아스러운 눈길이 그에게로 향했고, 마치 축복처럼 내려앉은 노란 꽃들 사이에서 그렇게 잠깐 동안의 침묵 후-

 

  "아아, 난 어스라고 해."

  "어스-으…?"

 

  어스가 살짝 입가에 미소를 띄었고, 자신의 손을 잡으라는 듯이 흰 손을 살짝 까닥였다.

 

  [*그의 이름은 어스인 듯 하다!

  *당신은 어쩐지 그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맞아, 난 어스. 폐허의 지킴이야."

 

  [*당신은 그의 손을 잡았다!

  *그에게 당신의 이름을 알려줄까?]

 

  아이가 자신을 향해 뻗어진 흰 손을 살짝 잡았다. 어스를 이리저리 살피고 뜯어보는 듯한 두 눈에 담겨 있는 건 호기심과 살짝의 두려움. 하지만 어스의 흡사 아이의 세계의 하늘과 같은 두 눈이 아이에게 속삭였다. 두려워 하지 마, 두려울 필요 없어. 그것이 아이의 착각이었는지 혹은 정말 어스가 그리 속삭였는지.

 

  [*마치 두려워하지 말라는 속삭임이

  *당신에게 들려오는 듯하다]

 

  어스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럼, 네 이름은 뭐야?"

  "플루토-"

  "플루토…? 폐허는 위험해. 나랑 같이 갈래?"

 

  어스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모를 걱정이 묻어나는 듯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걱정해주는 것일까, 약간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플루토는 일어섰다. 따라가지 않으면 이곳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어디선가의 본능이 그에게 외쳤다. 플루토가 햇빛을 반사해서가 아닌, 그 자체로 빛나는 듯한- 아마 무언가의 착시현상이었을 것이다- 노란 꽃들을 밟고 일어섰다.

 

  [*그를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

 

 

 

* * *

 

 

 

  그들이 어스가 폐허라 부르던 곳에서 조금 걸어 도착한 곳은 어스의 집이었다. 지하 세계에는 괴물들만 있다 하지 않았던가, 그 이야기를 깡그리 부수어버린 플루토가 지하로 떨어져 만난 두 존재, 어스와 그의 집. 일단 어스는 누가 보아도 괴물이 아닌 외관에 어스의 집은 그와 꼭 어울리는 상반된 분위기.

 

  [*지하 세계의 괴물은 정말 존재할까?

  *당신은 의심스러워졌다]

 

  "플루토, 뭐해?"

 

  어스가 플루토의 바로 앞 안락의자에 앉아 차 몇 모금을 홀짝였다. 플루토가 제 앞에 놓인 차를 바라보며 자신이 놀랄 정도로 가만히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는지 차로 손을 뻗다 그만 바들바들 떨리는 손에 차가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고 뜨거운 찻물이 카페트에 엎질러지며 검은 얼룩을 만들어냈다.

 

  [*당신이 만든 얼룩을 보아라.

  *사과해야 할 것 같다.

  *뜨겁다.]

 

"미, 미안…!"

 

  떨리는 목소리로 플루토가 어스에게 말했다. 어스가 조용히 괜찮다 말하며 안락의자에서 일어났고 플루토의 손을 잡아끌었다.

 

  [*당신 때문에 화난 것일까?]

 

  "어, 어스으…?"

 

  꼭 쥐어진 흰 손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눈빛, 어스는 붉은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추며 살포시 미소지었다.

 

  "플루토, 많이 피곤한 것 같아."

 

  낮잠 잘래? 뒤따른 어스의 말이었다.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플루토의 이리저리 오가는 눈동자에 비해 그의 것은 너무나도 침착해 보였다. 뒤따라오라는 듯 어스는 그가 서있는 쪽으로 손짓한 뒤 문을 나서 걸어갔고 플루토가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그를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가야 할 것 같다.]

 

 

 

 

* * *

 

 

 

  어스가 플루토를 데려간 곳은 작은 방이었다. 신발들이 어지럽게 놓인 그저 작은 방 하나. 노란색 벽지에 흡사 P로 보이는 기호 하나, 그리고 침대, 옷장. 플루토를 방에 데려온 어스는 일어나면 시나몬 버터스카치 파이 만들어올게, 라는 말과 같이 방을 나섰고 그대로 플루토는 침대 위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이곳은 어디일까.

  *안전한 곳일까?

  *당신은 의아스럽다!]

 

  잠이 오지 않는지 플루토가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그 방의 입구에는-들어갈 때는 미처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긴 거울이 하나 걸려 있었다.

 

  [*그건 당신이다, 하데스.]

 

  기다란 복도를 플루토가 다시 걸어갔고 오직 그 혼자만의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복도를 빠져나가자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보자.]

 

 

 

* * *

 

 

 

  생각보다 계단은 많았다. 몇 걸음인지 모를 계단을 그렇게 내려갔고 조금 지나자 플루토의 주변은 어둠으로 덮혔다. 빙글빙글 돌아 내려가는 이 계단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플루토의 뇌리에 몇 가지 생각이 스쳐나갔고 그는 갑자기 두러워졌다. 다시 올라가고 싶었지만 너무 멀리 내려왔다. 플루토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더니-

 

  [*밝아진 건가? 그런 것 같다.]

 

  갑자기 어두워진 것과 같이 갑자기 밝아졌지만 이 곳은 어스의 집이 아니었다.

 

  [*폐허다. 

  *당신이 떨어진 곳도 어쩌면

  *가까이 있을까.]

 

  플루토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수록 이상하게 무언가가 그를 따라오는 듯했다. 착각인가, 하고 그가 여러번 두리번거렸지만 착각은 아니다. 무언가가 뒤쫓아온다. 그렇다면 지금 쫓는 건 뭘까?

 

  [*불길한 예감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플루토의 아주 가까이에서 쾅 소리가 들렸다. 무의식적으로 가까이 있는 기둥으로 몸을 날린 그에게 흡사 흰 빛 덩어리같은 물체가 그의 얼굴을 살짝 스치고 기둥에 부딪힌다.

 

  [*기둥이 부서졌다!]

 

  그 빛 덩이들이 계속하여 그를 겨냥해 날아온다.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다시 빛이 다른 물체에 충돌하여 산산히 조각나며. 이 세계는 정말로 괴물들이 사는 세계일까? 이 빛을 조종하는 것은 괴물이 아니라 무어란 말일까, 한번에 수만가지 생각이 마치 그를 향해 정신없이 쏘아지는 빛덩이들이 그렇듯 스쳐 지나가다 순식간에 사라진다. 어스는 어디 있는 걸까? 그 생각도 그를 스쳐 지나가 그의 볼에 상처를 남긴 빛덩이가 지워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것이 아닌 붉은 무언가가 바닥을 적시고 물들인다. 이게 뭘까. 지나칠 정도로 비린내가 나는 이건?

 

  [*피다!]

 

  그 중심에서 어스가 걸어나왔다. 어스의 손에 들려있는 저건….

 

  [*식칼.]

 

  어스가 대답할 새도 없이 플루토에게 다가가 살짝 무릎을 꿇는다. 어스의 도톰한 입술이 플루토의 귀에 살짝 닿는다.

 

  "있잖아, 플루토."

  "…?"

 

  어스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짙은 피냄새가 플루토의 코를 날카롭게 찌르지만 어스는 다치지 않았다. 저건 어스의 피가 아냐, 플루토 속의 무언가가 말했다.

 

 

  "이 세계는 죽거나 죽이거나야."

 

 

  [*당신은 두려움이 당신을 속박하는 것을

  *느꼈다.

  *영원히 당신은

  *얽매여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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