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우쉽 글, 그림 페어합작
W. 리아 - 상인
D. 리아 - 루나
본 페어는 한분의 펑크로 인해 솔로로 교채 되었습니다.
그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다.
시리구나 이 사람은. 따뜻함을, 마음을, 너무 오랫동안 배제하고 홀로 살아온 탓에 시리구나.
그래도 속마음은 따뜻하지 않을까.
From. Some & Any
[루나 양의 모행성이 저에게 행성을 팔겠다고 하는 순간 자유를 돌려드리겠습니다. 독특하지도 않은 가치 없는 위성 따위에게는 관심 없답니다^^]
머리에 뒤집어쓴 하얀 천을, 제 목숨줄이라도 되는 양 한사코 벗어보인 적 없는 그는 내게 이렇게 말하였었다. 웃음지었다. 어둠 속이지만 그가 어두운 가운데서도 굳이 웃어보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 인질인 셈이겠지- 생각하였다. 소행성대에서 온 문의로 달떡 배달을 가던 중 눈 깜짝할 새 납치되어버린 것이 벌써 며칠 전이었다. 그 이후로부터 나는 컴컴한 암흑속에서 그의 철저한 감시 속에 두 눈만을 느릿하게 껌뻑이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일까, 밤낮없이 어두운 걸로 보아서는 적어도 창문 없는 실내일 것이 분명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컴컴한 이곳은 별빛 하나 없었다. 빛도 없이 반복되는 하루가 차츰 지겨워졌다. 나를 위해 어스가 행성을 팔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두려웠다.
어스. 나의 모행성. 누군가의 위성으로 소속되기 전 나는 어스의 위성이 되기를 직접 선택하였다. 푸르른 그 행성은 무척이나 착했다. 너무 착해서 탈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착했다. 모두를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스스로의 몸과 같이 아꼈다. 아니, 스스로의 몸보다도 더욱 아꼈다. 어스의 아이들;인간들이 아무리 저를 아프게 하여도 어스는 그저 짊어질 뿐이었다. 옆에서 보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로 오염물을 컥컥 토해내면서도 괜찮아, 괜찮아-.
그런 어스를 지켜보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왔다. 어스 역시 내게 의지하고 나를 아꼈다.
그래서 더욱 걱정되는 것이었다. 어스는 나를 상인의 손아귀에서 구해내려 할 것임이 분명하였다. 부디 이번에는 어스가 타인보다 스스로를 챙기기를 바랐다. 나를 위해 희생하지 말길.
끼익.
불현듯 들리는 문소리에 놀라 소리가 난 곳을 응시하였다. 들어온 이가 누구일지는 뻔한 일이었다. 보이는 것은 암흑뿐이었지만 그래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그가 보여 정면으로 쏘아보았으면 좋으련만. 꽤 오랜시간 이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탓에 두 눈은 아직까지도 어둠에 적응을 하지 못한 터였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루나양, 어스씨는 아직 멀었나봅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상인. 우주상인단 소속. 그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그의 얼굴 역시 아무도 모른다. 얼굴은 본 사람은 있어도 죽여버리지 않았을까.
"어스는 자신의 아이들을 쉽게 저버리지 않아."
대꾸도 해주지 않으려 하였었다. 하지만 갇혀만 있는 탓에 지루한 감정이 커지다 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입을 놀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상인이 비웃는 소리가 바로 옆까지 들려오는 것 같아 그만 기분이 저조해져버렸다. 입이 마음대로 움직일 건 또 뭐람- 속으로 투덜거렸다. 내 발이 있을만한 위치로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그럼 자신의 위성은 쉽게 저버리나 보죠? 버려지셨네요, 루나양."
짜증이 치밀었다. 버려진게 아니야, 어스는... 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것이고 나 역시 그것을 원했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서둘러 틀어막았다. 저 치와는 한 마디도 섞지 않을 요량이었다. 나쁜 놈. 어스를 동요시키기 위해 나를 이용하려 해?
"유감입니다^^"
후후- 그의 기분나쁜 웃음소리가 실내에 울려퍼졌다. 괜히 분한 마음에 죄 없는 입술을 잘근거렸다. 입술이 찢어진건지 옅은 피맛이 느껴졌다. 비리다. 손을 들어 입을 닦아내었다. 소매춤이 피에 젖어 축축히 젖어오는 것이 전해졌다.
"루나 양을 잡았던 그 순간 금방이라도 골디락스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망입니다."
탁탁. 그의 발이 바닥을 두드리는 것이 들렸다. 제 딴에는 나름 초조한 것이 분명하였다. 비록 조금일지라도 그 답지않게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 때문인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순간 나는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러는거야."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말을 걸지 않기로 스스로 결심한 것이 언제라고 벌써 이 모양 이 꼴이라니. 내 자신이 퍽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제길-, 입 속에서 되뇌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정말로 궁금하기도 한 사실이었기에 두 귀는 그의 답변을 얻기 위해 쫑긋이 세우고 있었다.
"호오, 웬일입니까?"
짐짓 놀라는 척, 어조를 의문형으로 바꾼 그의 말이 날아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지, 내 말에 답변을 해야하는 거라고.
"내가 먼저 물었잖아!”
내 말에 먼저 답하기나 해-의 어조를 강하게 실어 항변. 한순간 사방이 조용해졌다. 그러나 적막은 그 짜증나고도 익숙한 웃음소리에 금새 깨지고 말았다. 푸흐흐-, 본인은 어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들을 때마다 언짢아지는 소리. 잡혀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아마 소름이 끼쳤었지.
“궁금하십니까?”
그의 답변;질문이 돌아왔다. 질문의 연속이라니...말을 아끼려 하였으나 나의 대답을 재촉하는 듯한 질문 후의 고요함에, 왠지 대답을 해야 이야기가 이어질 것 같아, “조금-”이라 들릴락말락 대충 얼버무렸다. 그 자그마한 목소리를 용케 들은건지 그는 또다시 웃었다. 가식으로 웃는 것 말고 다른 감정은 아예 없을수도- 머릿속에 생각이 스쳤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상인이었을까요?”
무방비 상태인 나에게 다시금 예고없이 질문이 날아들었다. 대체 대화를 질문 없이는 이어나가지를 못 하는 것인가. 첫 질문은 내가 던져놓고 되물음을 벌써 몇번째 받은건지. 심지어 이번에는 내 질문에 관련된 말도 아닌 것 같아 확실히 무시하기로 했다. 허나 놀랍게도 그는 이번엔 본인의 말에 스스로 답해가며 혼자서 말을 이었다.
“당연히 아니죠. 그럼 저는 무엇이었을까요?”
아, 이건 살짝 흥미가 생긴다. 내가 한 질문과의 연관성 여부를 떠나 상인의 과거라니, 여태껏 우주상인의 과거는 단 한명의 것도 알려진 적이 없었다. 그들은 비밀스러운 집단이었다. 그곳에 소속되는 순간 진정한 모습과 모든 과거의 일들은 영원에 파묻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 그 집단 중 하나의 단원이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풀어내려 하는 것이다. 숨을 죽이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저 역시 한 천체의 주인이었답니다. 그 중에서도 행성주였죠.”
그리고 다음순간 그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온 한마디에 나는 앉아있던 땅을 박차고 일어났다. 발목에 채워진 수갑들이 철컹거리며 소음을 자아냈다. 놀란 눈은 동그랗게 떠지고 다물어지지 않는 입의 입술들은 격하게 떨렸다. 어둠 속에서는 그가 내 반응을 즐기고 있는 듯 쿡쿡거리는 작은 웃음 이외의 다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거, 거짓말….”
너무나 충격받아 겨우겨우 꺼낸 말 한마디.
“거짓말이 아닙니다. 저는 틀림없는 '골디락스 행성의 행성주'였거든요. 왼쪽 눈에 골디락스의 상징인 특유의 십자가 무늬도 아직까지 있다고요?”
사실을 나의 두 귀로 다시 한번 확인하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내 앞에 있는 저 잔혹하기로 유명한 상인이, 골디락스 행성에 미쳐있는 그가, 골디락스 행성의 행성주였단다.
골-디-락-스-행-성-의-행-성-주-였단다.
이건 거짓말이야,라고 본능이 속삭였다. 사실일리가 없다. 정신을 부여잡고 그를 향해 증오가 섞인 외마디를 질러내었다.
“어디서 수작이야! 너가 골디락스 행성주였다면 어스를 그렇게 괴롭힐 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래, 진정 저자가 골디락스 행성의 행성주였다면 같은 골디락스 행성주에게 그럴 수 있을리가 없었다. 자신도 그 고통을 겪어보았을 것임이 분명하기에. 그리고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기에.
“그러니까 루나 양은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이겠군요.”
제가 골디락스 행성의 주인이었다는 증거가-, 그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미성의 목소리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당연한 것 아닌가, 증거 없이는 저 놈의 말은 단 한마디도 믿을 수 없었다.
“우주상인들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지.”
이익이요-?^^, 불현듯 그의 말소리가 방 안에 낮게 깔렸다. 그가 본인의 손가락을 뒤틀어 관절을 뚜둑, 꺾는 것이 들렸다.
“제가 지금 이 말을 한다고 해서 도모할 수 있는 이익이 있기는 합니까? 끽해 보아야 루나양의 동정심을 얻는 것? 정말이지 영 쓸모없는 이익이군요.”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즐거워하던 미성의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갑자기 싸해졌다고 해야할까.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이 반응은 대체 뭐야-, 양 귀를 접어 늘어뜨렸다. 저벅저벅. 그가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다가옴과 동시에 온몸에 전해지는 냉랭한 살기에 부르르, 떨고 말았다.
“자, 보십시오.”
이렇게 말하며 그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리고는 어두운 푸른 빛을 발하는 가공된 핵-아무래도 장식용 전등 정도로 가공된 듯 한다-을 꺼내어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걸로 똑똑히 보시지요, 루나양.”
다음 순간, 그는 두건을 벗어내기 시작하였다. 머리를 살짝 숙이고 회색빛깔이 도는 손을 들어 살며시 천을 집었다.두건을 잡아당겼다. 두건을 당기자 짙은 푸른색의 머리칼이 그의 등을 타고 우수수 쏟아졌다. 엉덩이께까지 오는 긴 머리칼. 하지만 나는 고개를 더 높이 들어 그의 두 눈을 맞이할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핵을 쥐고 애처로이 그의 허리춤만을 쳐다볼 따름이었다.
“보십시오. 제 눈을 보시란 말입니다.”
싫어,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의 증거를 감당해낼 수 없을 것임이 분명했다. 손에 힘이 풀렸다. 카앙-,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핵이 바닥에 굴렀다. 그러나 내 앞에 있는 상인은 곧 핵을 집어들었다. 내 턱을 잡아 주억거리는 고개를 억지로 들어올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말을 이을 뿐이었다.
“똑똑히 보세요, 루나양. 제가 왜 거짓말을 할 수 없는지.”
상인은 제 얼굴 가까이로 빛나는 핵을 가져왔다. 그와 내 얼굴 사이에서 핵이 반짝여 눈을 감고 있음에도 빛에 눈이 시렸다. 조심스럽게, 살며시, 눈을 떴다.
어스의 것을 빼다 박은 듯한, 그러나 그 보다는 조금 탁한 그의 녹색, 청색 눈동자와 나의 황금빛 눈동자가 마주쳤다.
Goldilocks≒pain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아꼈다. 우주의 그분께서 직접 골디락스로 임명하신 후 자신의 행성에 생겨나기 시작한 모든 아이들을 끔찍이도 아꼈다. 자신의 몸보다도 더.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 중 일부의 지능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월등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직립보행을 했고 도구를 사용했다. 그는 이 아이들이 마냥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자신과 같은 항성계에 속한 행성들에게 이 아이들에 대해 행복하게 이야기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잠시뿐이었다. 지능이 고도로 발달된 이 아이들은 저들의 편리를 위해 기계장치들을 만들어냈다. 행성의 피와 같은 석탄과 석유들로 가동되는 기계들은 매일마다 연기를 토해냈다. 연기들은 매우 독했다. 그 때문에 행성주였던 그의 몸에도 독 성분이 쌓였다.
기계들은 날마다 칠흑같은 연기를 토해냈고 그는 날마다 칠흑같은 오염 물질을 토해냈다.
그래도 그는 아이들을 사랑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의 아이들이었다. 다른 행성들이 행성을 버리라고 해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곧 그는 아이들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원자력 폭탄을 사용하는 전쟁이 그의 행성에 있는 전 세계에서 발발하였다.
갈 때까지 가버린 행성은 손 쓸 수 없을 만큼 오염되었고 아이들은 모두 행성의 운명을 함께했다. 죽어버린 것이었다. 지능이 많이 발달한 그 아이들 뿐이 아니라 모두가.
행성주인 그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신의 아이들과, 자신의 행성과 운명을 함께하지 못하였다. 그저 오염물을 토해내고 또 토해내고 기절하였다 일어나기를 되풀이하며 운명을 지켜볼 뿐이었다. 행성이 부서지기 시작하였을 때 그의 머리 주변을 떠다니던 새하얀 구름처럼 뽀얗던 피부는 오염물질에 의해 거무죽죽한 잿빛으로 변해있었다. 십자가 무늬가 새겨져있었던 푸른 눈과 녹빛 눈은 탁하게 변하여 초점을 잃은 상태였다. 마침내 행성이 완전히 부서지자 행성의 대기 역시 산산조각이 났고 오랜 세월을 함께한 머리주변의 구름들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져버렸다. 눈동자의 십자가 무늬는 그가 과거에 골디락스 행성의 주인이었다는 것을 겨우 알 수 있을 정도로만 흐릿하게 남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하는 제 아이들과 자신의 행성 모두를 그는 그렇게 잃고 말았다.
“…누구의… 이야기일까요?”
울음소리가 중간중간 섞인 애절한 물음. 탁한 그의 두 눈동자가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래, 마치 행성을 잃고 갈곳없이 상인단에 발을 붙인 지금 그의 모습처럼. 그의 잿빛 볼을 타고 한줄기 검은 눈물이 흘렀다. 울면서도 습관이 되어버린 건지 그는 생긋이 웃어보였다. 눈물은 뚝뚝 흘러 그의 하얀 상인단복을 적셨다. 흰 옷이 검게 물들었다. 어째서일까-,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내가 골디락스 행성의 위성이기에 너무나 잘 이해가 되어 그런걸까? 벙쪄서 멍하니 그의 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미소를 띠고 우는 모순된 형상이 어찌나 서러워보이는지를 나는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어스님 일은…죄송합니다…루나양…제 아이들과 비슷한 생명들을…다시 얻고 싶은……제 개인적인 욕심이었습니다….”
내일 바로 태양계로 돌려보내드리겠습니다- 루나양이 정 원하신다면 오늘 바로도 좋습니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흐느끼는 그는 가까스로 말을 꺼내었다. 나는…나는…어떡해야 하지-?, 머릿속 생각들이 엉켜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생각하기를 포기해버렸다. 그저…내 몸이 움직이는 대로 따랐다.
가장 먼저 손과 팔이 움직였다. 나의 두 팔은 저절로 움직여 그를 끌어안았다. 나의 두 손은 그의 등을 꼭 부여잡았다. 그의 머리가 내 품에 파묻혔다.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해서 흘렀다.
두번째로 조막만한 입이 달싹거리며 움직였다.
“…사랑할…대상이 필요했던 거지?”
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잃고 상인단에 들어왔다. 그가 골디락스 행성의 주인인 어스를 본 순간 아무래도 질투가 났을 것임이 분명했다. 어스에게서 아이들과 행성을 앗아 자신이 대신해서 그들을 사랑하고 싶었겠지. 비록 과거에 골디락스 행성의 주인이었다고는 해도 한번 골디락스 행성의 주인은 영원한 골디락스 행성의 주인. 골디락스 행성의 주인은 대개 자신의 아이들을 그 어떤것에도 굴하지 않고 사랑할만한 이들이 선택된다. 그러니 내 앞의 상인 역시 골디락스 행성의 가치보다는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들이 있다는 것이 더 탐이 났을 것임이 분명하였다. 그는 너무 많은 시간을 사랑을 줄 대상 없이 외로이 지냈다.
“…지 않아도 돼.”
갑자기 그가 고개를 들었다. 울면서까지 웃는 기계인 줄 알았던 그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서려있었다.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았구나, 상인-. 그 모습이 귀여워 살짝 볼을 붉히며 웃었다.
“날 돌려보내주지 않아도 된다고.”
놀란 그에게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전의 일은 다 잊고 한동안 네 곁에 머물면서 친구가 되어줄께. 그동안 많이 외로웠잖아-”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잃어버린 당신의 아이들과 행성에게 주고 싶었던 사랑을 내게 줘. 나도 그럴테니.”
순간 그가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영업용 미소도 없이, 그저 막 울었다. 엉엉 소리를 내어가며 눈물을 강이 되도록 흘렸다. 그의 머리를 보드랍게 쓰다듬었다. 천천히-. 눈을 감고 등 뒤로 그를 토닥였다. 어스가 뇌리를 스치긴 했지만 어스의 곁에는 플루토를 비롯해 따뜻한 태양계의 가족들이 있으니 잠시동안 떠나있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상인님,
울지마.
내가 곁에 있어줄께.
「에필로그」: 상인
“그러고보니 상인 진짜 이름도 아직까지 안 가르쳐줬잖아?”
눈이 부신 긴 금발을 포니테일로 묶은 그녀가 툴툴거리며 나를 따라온다.삐진건지 볼에 바람을 불룩하게 넣어가지고는 내 쪽을 째려본다.
그녀와 친구로 지낸지 벌써 3주하고도 이틀째.
요즘따라 하루가 즐거워졌다.
뚜르르-, 상인들의 연락수단인 크리스탈과 같이 생긴 볼이 울린다.
"루나양,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냥 루나라고 부르라니깐-!, 이라 항의하는 그녀를 뒤로 하고 코너를 돌아 아무도 없는 상인단원용 휴게실로 들어갔다.
"네, 총 담당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전화 너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건 있잖나, 발견했다던 골디락스 행성 말이야. 지구였나?]
서둘러 답한다.
“네. 그 건 관련해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곧바로 물음이 날아든다.
[지금 처리 단계는 어느 정도인가?]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서린다. 아마추어같이 스스로의 기분을 주체하지 못해 들뜬 어조가 되어버린다.
“곧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행성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고서를 올린 골디락스 행성의 위성을 거의 제 편으로 만들었습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처리되고 있습니다.^^”
답변을 듣고 만족한 웃음소리가 전화 너머에서 호탕하게 들려왔다.
[역시 상인단의 골디락스 행성 전문 엘리트답군 그래. 그럼, 수고하게.]
전화가 끊어졌다. 연락용 볼을 옷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나가기 위해 휴게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밖에서는 루나양이 기다리고 있겠지-, 나가기 전 문 앞에 멈추어 서서 통화 중 얼굴에 떠올랐던 감정을 지웠다. 문을 열었다. 예상을 깨지 않고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
“흥, 통화가 너무 길어.”
이 말을 남기고 그녀는 짐짓 화난 것처럼 앞서 걸어가버린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행동이 그녀가 진짜로 화난 것이 아니라 장난으로 나를 골려주려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연기에 속은 척하며 서둘러 그녀를 뒤쫓는다.
“루나양 좀 천천히 가주세요-”
라고 하기가 무섭게 -루나라고 부르라니까-!, 앙칼진 소프라노 톤의 목소리가 실려온다. 그에 나는 미소짓는다. 뒤를 돌아 나의 미소를 본 그녀 역시 마주 미소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