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우쉽 글, 그림 페어합작
새벽밤
그는 통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곤히 자는 프라이와 새턴을 뒤로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보름달이 밝았다.
헤벌레한 표정으로 달을 바라봤다.
달…둥근…해…둥근 해…태양…태양…?선?
연관되어 마구 떠오르는 것들에 먼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
오후에 낮잠을 자며 꿨던 꿈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선크림을 발라달라고 말하던 선의 모습이 생생했다.
선을 닮은 붉은 비키니에 대조되던 우윳빛 살이 일렁였다.
“으으…!!”
먼은 잡생각…이라기엔 좀 그런 외설스런 생각들을 떨쳐내려 했다.
애꿎은 머리칼을 헤집었다.
화끈 달아오르는 얼굴을 식히려 손부채를 부쳤다.
달밤에 혼자 난리란 난리는 다 부리고선, 그제야 그것이 부끄러워졌는지 먼은 조용히 마른세수를 하고 말았다.
슬쩍 고개를 들어 휘영청한 보름달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루나님, 보고싶어요….’
왠지 이리저리 치이는 듯한 하루에 지쳐 루나님이 간절했다.
세럴의 모래밥을 먹게 되지를 않나...요상한 꿈을 꾸게 되질 않나….
달떡 하나 집어먹으면 피로가 사르르 풀릴 것만 같았다.
‘이번 휴가만 끝나면 루나님께로 달려가 버릴까-싶네….’
먼은 모래사장 근처의 벤치로 가 앉았다.
“그래, 이런 망상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
망상일 뿐인걸.
먼은 쓴 맛에 뒷 말을 삼켰다.
턱을 괴고 앉아 가만히 있자니, 잠이 솔솔 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규칙적인 파도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자장가 같은 그 소리에 저절로 눈이 감기는 듯 했다.
“먼?”
“으에엑?!”
먼은 소스라치게 놀라 벤치 뒤로 자빠져 버리고 말았다.
“…….”
잠시의 어색한 침묵이 지나가고 선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어…손잡아 줄까?”
선이 손을 휘적이며 건넸다.
먼은 얼굴이 화끈거려 죽을 것 같았다.
“어…아…, 아…아니야….”
속으로 죽자, 죽어 라는 말을 곱씹고선 엉거주춤하게 일어났다.
엄청난 쪽팔림에 찔끔 나올뻔한 눈물을 삼키고 다시 벤치를 일으켜 세웠다.
선이 이름 한번 불렀다고 이렇게 놀라다니, 먼은 이럴때만 과도하게 반응하는 자신이 싫었다.
다른때는 둔감하면서 말이다.
루나님께 좀 더 눈치를 키우는게 어떻겠냐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니까.
하긴 그 자신이 생각해도 눈치가 없는 것 같았다.
의도 담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때가 몇 번이던가.
이리저리 떠오르는 생각에 한숨을 푹 쉬었다.
어떻게 봐도 선과는….
“안 어울리잖아….”
무심코 속마음을 내뱉고 말았다.
선이 먼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응? 뭐가 안 어울린다는 거야?”
“어, 어? 아니…아무것도….”
헤헤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것으로 먼은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포기 할 수 없다.
그러나 어울리지 않는다.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와 즐길 줄 알고 빛나는 선은 역시 빛과 그림자 정도의 차이였다.
어느새 벤치에 앉은 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아직 안 자?”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세럴이 준 모래밥을 무심코 조금 먹었더니 말이야. 영 속이 좋지 않아서 말이지….”
선은 혀를 웩 내밀며 고개를 저었다.
까끌까끌한 느낌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듯이 말이다.
“괘, 괜찮아? 어디… 많이 아픈 건 아니고?”
선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씨익 웃었다.
“요거요거~ 지금 나 걱정해 주는거야?”
그러면서 몸을 쓱 들이밀면서 어깨를 툭 쳤다.
“아니, 그…탈나면 안되니까….”
쭈뼛거리며 안절부절 못하는 먼을 보며 선은 기분좋게 웃어보였다.
“그래, 난 네 이런 면이 좋다니까?”
먼은 놀라 고개를 들어 선을 바라봤다.
“알게 모르게 챙겨주잖아. 자상한 면이 좋다구.”
그는 벙찐 얼굴이 되어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은 사이렌소리로 가득했다.
‘이..이, 이게 무슨 의미?! 무슨 의미 일까나?! 여,여,역시 선도 나를…!’
‘아냐! 이 멍청아! 먼충이라 불리는 게 일상인데 선이 날 좋아할 리가 있냐!’
‘다들 잘 생각해 봐…그저 내 자상한 면이 좋다고 말했을 뿐이라고? 착각 하지마!’
‘바보들! 선은 내 마음도 모르고 있다고! 그런데 선이 먼저 좋아한다고 말해? 좋아하고 뭐고, 그런게 존재하겠냐고!’
‘꿈! 꿈이다! 이건 꿈이라고! 빨리, 빨리 깨어나!’
“먼?”
선이 다시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야!”
먼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볼에 가져다 대고 꼬집었다.
꿈이 아니다.
먼은 생생한 현실의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결심을 굳혔다.
얼얼한 볼을 대충 문지르며 먼은 선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
망설이기를 몇 번, 먼은 떠듬떠듬 말을 꺼냈다.
“난, 나도….”
선이 답답하다는 듯이 살풋 미간을 찌푸렸다.
“나도…네가…네가 웃는 게…활발한 모습이…좋아….”
한 번 말을 꺼내고 나니 술술 나왔다.
“저, 전부터… 쭉…좋아했고… 서, 선물도… 주고 싶었어….”
먼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되는 대로 내뱉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말 해! 좋아한다고!’
속으로 좋아해라는 말을 되뇌어 본 적을 세어보자면 셀 수 없었다.
“나는 선 너를 좋아…!”
“에에엥? 먼, 뭐하는 겁니까? 이 야심한 밤에 선이랑 둘이서.”
우물거리는 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덜스. 너 아직도 나무 위에 있어?”
선이 고개를 들어 나무에 매달려있는 덜스를 향해 말했다.
덜스는 지치지도 않는지 나무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깜박 잠들었다 소란스런 소리에 잠이 깬 듯 했다.
먼은 덜스의 등장을 원망하며 나무를 올려다 보았다.
울상이 된 먼을 보고 선이 말했다.
“먼, 너 어디 아파? 울 것 같다?”
“으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먼은 눈물을 다시금 삼키며 애써 웃어보였다.
“아, 그런데 네가 나를…뭐라고 했었지?”
“응…. 그냥… 아무것도…아무것도 아니야….”
먼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힘없이 늘어졌다.
“나는 이만… 갈래…. 지쳤고… 피곤해… 다들 잘자….”
먼은 이내 일어나 휘청이며 세럴의 모래집으로 걸어갔다.
“어어, 그래. 잘 자,먼.”
선은 어리둥절 하면서도 먼을 배웅해 주었다.
“아……, 사금치….”
결국 먼은 고백에 실패를 한 채 눈물을 삼키며 조용히 덜스를 원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