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약속시간까지 앞으로 5분. 나는 숨을 크게 들이내쉬었다. 배 속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만 같은 기분에 주먹을 꼭 쥐고 어지러운 머릿속을 차근차근 정리해보며 차분히 생각해보려 노력했다.

 

 머리는, 아침에 프라이가 세팅해줬고. 옷은, 어스님이 가지고 계시던 정장 중 유일하게 하얀색이었던 한 벌을 빌려주셨다. 신발은, 세럴이 선물로 준 구두를 신었고. 꽃다발은, 덜스가 눈물을 머금고 정원에서 꺾어준걸 웬즈가 포장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장소는, 투스가 추천해주었던 맛있단 식당에 예약을 해두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모두에게 전부 도움만 받았네. 나중에 달떡이라도 잔뜩 갖다줘야지. 하릴없이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귓가에서 쿵쾅대며 울리는 심장소리에 초조하게 꽃다발 가운데에 자리잡은, 그녀를 닮은 오렌지빛 장미 한 송이를 매만졌다.

 

 약속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겨우 2분. 수도 없이 연습했던 말을 다시 한 번 입 속에서 굴려보았다. 말재주가 없는 탓에 만족스럽게 전해지진 않겠지만.

 

 이제 약속시간까지 1분. 바싹바싹 마르는 입술을 물로 적시며 떨리는 손을 진정시켰다. 너의 눈을 보며 전하고 싶은, 전해졌으면 하는 말. 손목에 차고있던 시계의 초침이 한 걸음을 더 옮기고 그에 분침도 한 걸음을 따라 옮겼다. 그리고-

 

 

 딸랑-

 

 

 미약하게 울려퍼지는 레스토랑의 종소리가 사람들의 말소리를 뚫고 귀에 꽂혔다. 무의식적으로 소리 쪽으로 향한 시선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에게 닿았고. 이윽고 숨이 멎은듯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고급 레스토랑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칼과 어울리는 빛깔의 가벼운 미니드레스를 차려입은 그녀의 모습은 평소보다도 빛이 났다.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는 그녀의 모습에 멍해졌던 정신을 다잡으며 그녀를 불렀다.

 

 

 "선, 여기-"

 

 

 문에서 그리 멀지 않아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나를 보고 활짝 미소지으며 또각또각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여신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기도 전부터 뭐가 그리 신나는지 마치 한 마리 종달새마냥 들떠 지저귀었다. 그에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가는 것을 느끼고는 실소를 흘릴뻔했다. 너는 너의 존재만으로도 날 이렇게 무장해제 시킬 수 있구나. 단지 내 앞에 그녀가 있단 것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단숨에 좋아지고, 있을리가 없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듯한. 나에게 이런 기분을 선물하는 오직 하나뿐인 소중한 선.

 

 곧이어 주문한 음식과 와인이 나왔고, 우리는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며 따스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대부분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를 쳐주는 등 거의 듣기만 했지만. 그녀의 활기찬 목소리를 나의 것으로 방해하지 않고 온전히 마음에 담고 싶었다. 솔직히, 목 끝까지 차오른 감정에 입을 열면 내가 어떤 말들을 쏟아낼지 두려운 탓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녀와 함께라면.

 

 

 "근데 오늘 왜 보자고 한거야-? 가끔은 이런 외출도 기분전환 겸 좋긴 하지만!"

 

 

 그리고 마침내. 나는 테이블 밑으로 꽃다발을 꽉 쥐었다. 올게 왔구나.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에 가볍게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입을 느릿하게 열었다. 이 마음을 전할 기회는, 이젠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몰라.

 

 

 "선, 오늘 만나자고 한건, 그게 있지-"

 "뭐야, 먼충이. 말할거면 깔끔하게 빨리 말하라구?"

 

 

 당장이라도 입 밖에 내어질 것 같은 말들.

 

 단순한 세글자로는 전부 담아낼 수 없을만큼 널 향한 내 마음이 커다래서. 그래서 이 한마디에 차고 넘칠만큼 담뿍 담아 전하고싶은.

 

 

 "내가, 그 직접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러니까, 선."

 "그렇게 시간 끄니까 기대되잖아- 얼른 말해봐!"

 "…좋아해. 아니, 사랑해. 나의 사랑스러운 태양."

 

 

 그 단어를 내뱉고나니 마음이 삽시간에 편안해져만 갔다. 그래, 말했어. 조금은 후련한 마음에 평소라면 하지않았을 대담한 행동을 했다. 테이블 위에 살포시 올려진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붙잡아 자리에서 일으켰다. 멍한 얼굴로 그대로 따라일어선 그녀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꽃다발을 내밀며 눈을 맞추었다. 아름다운 붉은 눈. 입가에 기분좋은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어 오늘의 만남의 종지부를 찍을 말을 꺼내었다.

 

 

 "…나랑, 사귀어줄래? 이런 인간같은 관계, 우리한텐 이상할지 몰라도… 선, 널 사랑하고 있어."

 "……… 이… 이 바보야!!"

 

 

 조금 정신을 차린듯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나의 말에 대답하며 머리를 콩, 하고 쥐어박은 그녀에 잠시 어리둥절 할 수밖에 없었다. 응? 바보?

 

 

 "… 내가……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렇게 늦게 말해주는거야! 바보 먼…!!"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완전히 넉다운 된 기분이었다. 아아,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울까. 조금 붉어지는 느낌에 살짝 얼굴을 가리고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기쁘게 웃으며 그녀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늦어서, 미안해."

 

 아름다운 달빛을 받으며 그녀의 입술과 나의 입술이 살며시 맞닿았고, 그렇게 행복한 하루가 마무리 지어졌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Contact Us via TWITTER @kcs91139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