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우쉽 글, 그림 페어합작
그 날은 유독 하늘이 파랗던 날이었다. 나의 빛은 일곱 개의 색을 담고 세상 모든 것에 색을 내렸다. 그리고 빛을 맞은 것들은 제각각 자신의 색을 뽐내었다. 그 것들이라 함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말했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붉은 사과나 수평선 끝 그 너머 까지 뻗어있는 새파란 파도 뿐 만이 아니었다. 하루가 고요하지 않도록 지저귀는 나무에 자리를 잡은 따뜻한 갈색으로 덮인 참새, 담벼락 위에서 도도하게 제 하얀 털을 핥는 고양이조차 나의 빛을 받아 비로소 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빛을 받았다. 내 주황빛 머리칼은 태양을 닮은 색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태양이니까, 나 역시 태양의 색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리라.
태양에 빨간색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태양은 대체로 붉었지만 빨갛고, 군데군데 주황색이었고, 아주 뜨거운 곳은 노란색으로 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태양을 부를 때 태양이라는 이름이 아닌 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면 그 모든 색은 색이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태양이 해가 되는 순간 해는 모든 색을 품은 빛을 지구로 쏘아 보냈고, 빛은 여러 가지 물건에 닿아 그들의 색으로 변했다.
나는 태양이었고, 색이었고, 세계의 모든 색을 품은 다채로운 빛이었다.
* * *
너가 달라 보인 것은 며칠 후였다. 아버지가 나에게 태양의 자부심을 불어넣고 간 날이 지나고 며칠 후. 아침에 너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를 깨우기에 고개를 돌렸다. 막 자고 일어난 후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창문으로 들어오던 아침 햇살 때문인지는 몰라도, 너가 달의 아이라 그런 건지는 몰라도 노란 빛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나 빛을 가진 건 나뿐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너에게서 빛을 보았다. 나의 빛과는 많이 달랐다. 나의 빛은 무언가에 닿아 색으로 변하기에 그것은 처음에는 무색이었다. 하지만 너가 가지고 있는 빛은 애초부터 노란 빛이었다. 순수하게 노란 색을 지닌 빛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처음에는 무색이니까 아무것도 없는지도 모른다고. 아무것도 없고, 색을 품은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리고 너의 노란 빛이 보였다. 순수한 노란 빛은 나의 온 정신을 뺏어가기에 충분했다. 그 때 내 마음에 든 감정은 순수한 노란빛에 대한 두근거림.
혹은 너를 향한 두근거림이었다.
* * *
너는 언제나 반짝반짝 빛났다. 어린 시절 웅크린 너는 나에게 손을 내밀며 미래는 반짝반짝하니까 앞으로 나아가야한다고 했다. 그 손은 가히 아름다웠다. 너는 입으로는 미래가 빛난다고 말했지만 그 순간 내가 보고 있는 그 손보다 빛나고 있는 건 없었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미래도 빛나고 있는 이유는 너가 있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루나님이 나에게 말했다. 너는 순수한 노란색이라고. 순수함의 상징이자 인간들이 자주 형용하는 달의 색인 노란색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나를 보면 노란색이 떠오른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노란색보다는 너가 더 좋았다. 너는 모든 색이 모여서 조화를 이뤘다. 그리고 선명한 색채임에도 눈이 아프거나 그런 것이 없었다. 아니 싫기는커녕 따뜻했다. 그 따뜻함에 매료되어 추운 겨울 날 한없이 바라보게 되는 불꽃처럼 멍하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너를 보고 있을 때가 잦았다. 네 빛은 그랬다. 사람의 시선을 끄는 힘이, 그리고 바라보는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 * *
그걸 자각한 순간부터 네 빛이 자꾸만 내 눈에 띄었다. 다 같이 있을 때도 노란빛이 먼저 보였고, 저 멀리 있을 때도 선명한 노란빛이 보인다 싶으면 그 자리에 너가 있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 하지만 네 빛이 눈에 띈 순간부터, 그 날 아침부터 나는 하루 종일 네 빛만 보고 있었다. 너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렸다. 그래서 네가 평소처럼 건넨 아침 인사도 이제는 그 전처럼 웃으면서 대답할 수 없었다. 네가 좋은 아침이라고 웃으면서 말하면 그 노란 빛은 더 환하고 따뜻해져서 나를 감쌌다. 포근한 느낌은 견딜 수 없이 행복해서 온 몸이 뜨거워지는 것처럼 머리가 띵해졌다. 모두 그 노란 빛 때문인 것 같아서 눈을 감아보았다. 그랬더니 이번엔 네 목소리가 들렸다. 이것저것 때려 넣은 음식을 맛있다고 억지로 웃으며 말해주고,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툴툴대는 내 짜증을 머쓱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주고, 춥다는 말에 목도리를 벗어 둘러주고, 덥다는 말에 손부채로 내 땀을 식혀주는 네 행동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당연스럽게 받아온 너의 호의들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왜 해 주는 거지? 하고 이유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도망치려고 했었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목소리가 들렸고, 귀를 막으면 노란 빛의 따뜻함이 느껴졌다.어딜 가든 네가 있었다. 내 주위 모든 것에 네 빛이, 즉 네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빛이 아니라 너를 피해서 도망갔다. 그랬더니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언제나 있었던 자리가 텅 비어버리게 되었다. 친절한 아침인사가, 따뜻한 미소가, 그 무엇 하나도 평소처럼 돌아갈 수가 없게 된 그 빛이 원망스러웠다. 동시에 마음속으로 그리웠다. 안절부절 못하던 나의 며칠을 지켜보던 프라이가 비웃었다. 녀석도 분명히 노란색이었지만 먼의 노란 빛이 아니었다. 녀석은 그냥 샛노란, 노란 색이었다. 빛이 아니었다. 먼에게만 있는 무언가가 있다. 프라이가 내 말을 듣고는 상대 잘 만났다며 비웃었다.
“좋아하는거에요. 그런게.”
* * *
어느 날부터 네가 이상하다. 그러니까... 평소랑은 좀 다른 것 같았다. 예전에도 물론 내가 먼저 말을 걸고,내가 먼저 행동한 건 맞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보다 더 옛날 너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에 대하면 새발의 피도 아니었다. 그렇게 소중한 걸 받았으니까 뭘 해줘도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나보다는 다른 일들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먼저 너에게 다가갔다. 그러면 너는 웃으면서는 아니더라도 같이 그래 안녕. 하고 인사해주고, 부채로 더위를 시혀주거나 목도리를 둘러주면 그래도 고맙다고 말해주었는데. 요즘은 인사를 해도 휙 고개를 돌리고, 목도리나 부채를 가져다주기는 무슨 내가 다가가기만 해도 거리를 멀리 떨어뜨려버렸다. 아쉬웠다. 그리고 슬펐다.
네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더 이상 반짝반짝하는 빛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 전에는 내가 항상 붙어있어도 너는 신경도 쓰지 않았기에 언제나 아름다운 색들을 지켜보며 살았는데, 너가 자꾸만 도망치니까 나는 볼 수가 없어진 거다. 네 주변에서 오오라처럼 너를 중심으로 발하는 여러 가지 빛들은 너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면 너를 따라가느라 빛 역시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곤 했다. 아쉬웠다.
빛이 사라진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가 멀어지는 것이 슬펐다.
빛을 좋아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난 그 빛보다 이전에 너를 먼저 사랑했다.
“선이 보고싶어.”
내 혼잣말이었다. 눈을 감고 있었는데도 갑자기 시야 한구석이 환해지는게 느껴졌다. 눈을 뜨지 않아도 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눈을 뜨면 사라질 것 같아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잔뜩 긴장한 상태로 온 몸을 굳혀버렸다. 너는 내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손이 따뜻했다.
“네 빛이 좋아.”
너가 말했다. 나한테 빛이 있었던가? 루나님이 말하시던 그 노란 빛이던가. 너가 너무 환해서 다른 빛은 신경쓰지도 못했다. 비록 그 빛이 나의 빛이었다해도. 너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네가 좋아.”
여전히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떴을 때 너는 내 앞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눈물이 차올랐다. 왜인지는 몰랐지만 눈물이 나고, 마음이 조여드는 듯 아팠다가,다시 풀어졌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웃었다. 너가 웃는 것처럼. 내 눈물을 닦아주는 네가 웃고 있는 것처럼.
“내가 좋아?”
불안해서 다시 되물었다. 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색이 빛났다. 그제서야 보였다. 네 색들과 함께 빛나는 나의 노란빛이.
“내가...”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긴 웃기지만.
정말 아름다웠다.
나를 좋아해?
내가 널 더 좋아해!
노란빛 세계

“내가 널 더 좋아해.”
첫 고백도, 나는 이렇게 바보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