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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의 오디오 플레이어 옆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익숙한 음악이 퍼져 나오고 있다. 기타 소리다. 중간중간 잡음이 섞여 있는데, 감탄하는 내 목소리와, 화음을 끼워 맞추는 내 목소리, 그리고 그런 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작게 웃는 너의 웃음소리까지 들려 있었다. 잠시 동안 음악이 멈추고, 너와 내가 서로 미소를 교환했을 즈음, 다시 음악이 시작된다. 또 기타다.

 

 

  기타 소리가 애절하게 울려 퍼진다. 우리 관계가 좋았을 때 네가 좋아하는 노래라며 내게 들려 주던 멜로디다. 그걸 녹음해 놓고 되돌려 들어 보곤 했는데. 그땐 그 멜로디가 참 잔잔하고 고요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왜 지금은 이토록 애절하게 들리는 걸까.

  더 이상 내 곁에 네가 없다, 생각하니 저 노래가 그토록 슬프게 들리는 것이리라. 작고 여린 손으로 기타 줄을 튕기던 네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잔잔히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반주에 맞춰 내가 불렀던 노래.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노래다. 처음 저 노래를 들었을 때는 간간이 반복되는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는 정도였는데 어느 샌가 나는 거기에 가사를 입히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너는 작사에 재능이 있다며 칭찬을 해 줬지

 

  코코아가 담긴 머그컵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생각했다. 이건 우리가 50일 째 된 날 받은 거. 저건 내가 100일 째 되는 날 네게 선물했던 것. 저건, 200일. 또 저건, 300일…

 

  차근차근 머릿속으로 생각하다 보니 너무 많은 물건들에 너의 추억이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그만큼 우리가 오랫동안 함께했다는 것이겠지. 한숨을 푹 내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요즘 들어 악몽을 자주 꾼다. 너와 내가 헤어지는 장면이 반복되는 꿈.

 

 

  꿈 속에서 너는 나를 아릿하게 바라보며 떠난다. 그런 너를 붙잡으려 달려가지만, 중간에 강한 충격을 받고 넘어진다. 다시 일어나 네게 달려가려 하지만, 무언가 투명한 벽이 너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계속해서 보이지 않는 벽을 두드리며 나는 네 이름을 외쳤고, 걸어가면서 단 한 번도 나를 돌아보지 않던 너는 벽을 내리치는 내 주먹에서 피가 흐를 즈음에서야 뒤를 돌아보며, “이제 충분해.” 하고 떠나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벽은 사라졌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항상 반복되는 꿈이다. 원인도 의미도 모를 꿈. 우리가 정말 헤어질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정말 간결하게, 정말 조용하게. 이별은 마치 술래의 뒤에서 까치발을 들고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아이처럼, 소문도 없이 소리도 없이 우리 사이로 바짝 다가왔다.

 

  이별은 생각보다 짧았다. 만남에 비해서는. 그 과정은 어쩌면 많이 길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인지도.

 

  이별 몇 달 전의 나는 당시 굉장히 울적해 있었다. 스물의 후반을 달리던 나이. 몇 년 간을 백수로 살다가 간신히 잡은 직장에서는 나를 굉장히 부려먹었고,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상사가 있었으며, 굉장히 불합리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체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 체제에서라도 적응해 가지 않으면 나는 평생을 백수로 살 수도 있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라는 심정으로 하루 하루 버텨 나가며 그 자리에서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게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같은 직장 동료가 어느 순간 부터 나를 대하던 태도가 달라지더니 나를 집요하게 쫓아다니기 시작하던 것이다. 회의 중간에 화장실을 가던, 사장의 호출로 사장실로 가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끝까지 쫓아다니며 마치 감시하듯이 나를 대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을 때, 나는 웬즈와 정말 크게 싸웠다.

 

  웬즈가 잘못한 건 없었다. 웬즈는 평소와 같이 날 대했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예민하게 군 것이다. 나를 챙겨주는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거슬렸고, 나의 손을 잡는 그녀의 모습에 짜증이 났으며, 직장에서 안 좋은 일 있냐고 조심스레 묻는 웬즈의 말에 나는 폭발해버렸다. 그래선 안 되는 거였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화를 내며 나는 웬즈에게 삿대질까지 해 댔다. 그 내용을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답할 테지만 내가 큰 소리로 화를 냈을 때 웬즈의 표정만은 똑똑히 기억했다. 공허한 표정. 당황, 혼란, 슬픔을 넘어 웬즈는 나를 공허한 눈빛으로 보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불길한 기운을 느낀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웬즈는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정작 사과를 할 사람은 난데.

  그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났다. 나는 초조하고 불안했으며, 웬즈는 조심스러웠고 침착했다. 항상 웬즈는 내가 먼저 화를 내도 제가 먼저 사과를 했다. 항상 일은 그렇게 끝났다. 마치 데이트의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일은 내가 그날따라 몸이 좋지 않아 회사를 가지 않은 날 일어났다. 나는 새벽에 눈을 떠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끼고 웬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웬즈는 걱정된다는 투로 많이 아프냐 물었고, 당장 이쪽으로 오겠다 하였다. 그 전날에 내가 그렇게 역정을 냈는데도 웬즈는 꺼리는 구석 없이 내 집까지 찾아 와 나를 정성껏 보살폈다.

 

  문득 그런 웬즈를 보며 다시 한 번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아니, 연민이랄까. 왜 하필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만나 이 고생을 할까. 생각하던 중에 숟가락을 쥐던 웬즈와 눈이 마주쳤다. 그 때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는 웬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을 감고 웬즈에게 키스했다. 당황하던 웬즈도 이내 나를 껴안았다. 한동안 말없이 그러고 있었다. 속의 공허함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웬즈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서로 떨어지면서 나는 웬즈에게 사랑한다 속삭였고, 웬즈는 얼굴을 붉히며 나도, 하고 답했다.

  일은 바로 다음날에 터졌다. 하필이면 그 동료가 나의 집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요즘 들어 쫓아오는 정도가 도를 지나치다 싶었는데 결국 집까지 알아내고 만 모양이었다. 거기까지라면 재수 없어하고 끝내면 되는 일이지만, 문제는 그가 나와 웬즈가 키스하는 것을 봤다는 것에 있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동료 직원들이 나를 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문은 사장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결국 그 소문이 퍼지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나는 회사에서 잘렸다.

 

  하필이면 그 날이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비가. 축축하고 눅눅하게, 나를 집어삼킬 듯이 질척질척 무겁게도 내렸다. 나는 무거운 짐을 이끌고 내 집으로 향했다. 항상 회사에 다닐 때엔 그 거리가 참 멀게 느껴졌는데. 오늘은 너무 짧게 느껴졌다.

 

  물론 집 쪽에서도 비가 내렸다. 질척거리는 발걸음으로, 나는 비를 맞으며 천천히 내 집으로 걸어갔다. 원래 지하철에서 내리고도 한 시간을 걸어가야 있는 집이라, 나는 감기에 걸릴 각오를 하고 이를 악물고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내 머리 위로 우산이 하나 씌워졌다.

 

 

  웬즈였다.

 

 

  웬즈는 별다른 말 없이 내게 들려진 짐을 흘깃 보고서는 나를 이끌었다. 내 집 쪽으로. 덩달아 나도 침묵하며 걸었다. 한참을 그렇게 걷고, 마침내 내 집에 도착했을 때 웬즈는 덤덤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헤어질까 봐요."

  나 또한 공허한 목소리로 그래, 하고 답했다. 대답을 하고, 텅 빈 마음을 갖고 마지막으로 웬즈와 시선을 얽었다. 웬즈는 그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바로 되돌아갔다. 나는 그런 웬즈를 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우리의 이별은 그랬다. 단순하고도 날카로웠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 한 편이 아려온다. 이렇게 아플 줄 알았다면, 후회할 줄 알았더라면 그 때 너를 잡는 거였는데. 절대 들리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항상 그렇게 스스로 속삭이곤 한다.

 

 

 

  스피커에서 잡음이 흘러나왔다. 노래가 끝난 모양이었다. 감성에 젖어 무거워진 마음을 하고 나는 오디오 플레이어에서 노래가 담긴 usb를 꺼내었다. 한참을 그것을 바라보다가 다시 꽂고는, 처음부터 음악을 틀었다.

 

  [난 네가 기타 칠 때가 제일 좋더라.]

  [그래요…?]

 

  기억난다

 

  저 말을 하고선 너는 슬쩍 웃었었다. 나도 마주 웃었지. 이렇게 추억이 많았는데, 이렇게 기억할 거리가 많은데.

 

  있지, 웬즈야. 나는 네가 궁금해. 너는 과연 나와의 이별을 후회하고 있을지.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지. 혹시 그렇다면, 만약 그렇다면 오늘 밤, 내가 전화를 할 테니 받아 주겠니. 아무렇지 않게 내가 건네는 일상적인 대화, 너도 이어가 주겠니.

 

 

  핸드폰의 화면이 켜졌다. 마침 전화가 오고 있었다. 누굴까, 핸드폰을 들어 올리고 화면을 살피던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발신인. 웬즈.

  나는 때로 그 때를 추억하곤 합니다. 당신에게 기타 소리를 들려주던, 난생 처음 만난 그 녀석의 소리를 테스트 해 보던 그 때. 당신은 나를 보고 내가 기타 연주할 때 모습이 참 예쁘다며 칭찬을 했었지요. 나는 그에 쑥스러운 마음이 들어 얼굴을 붉히며, 그래요..? 하고 답했었어요.

 

 

  당신은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기에 과분하기도 한 사람이었어요. 항상 나를 아껴 주며, 챙겨 주었던 사람이었어요. 내가 응석을 부려도, 어리다는 걸 핑계 삼아 이득을 취하려 해도 당신은 항상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봐 주기도 했죠. 나는 그게 내 권리이자 당신의 의무인 양 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철이 없었습니다.

 

 

  당신이 지쳐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제서야 생각했습니다. 아, 당신도 많이 힘들었었구나. 당신 말로 제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했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부렸던 무리한 부탁들이, 부탁을 가장한 명령들이 다시 제게로 돌아와 제게 비수를 꽂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보며 나는 연민을 느꼈습니다. 그 동안 나로 인해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봐요, 당신도 아팠잖아요. 근데 그걸 숨기고 있었을 뿐이잖아.

 

 

  동료로 인해 힘들다는 고백을 들으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묵묵히 당신의 얘기를 들어 줄 뿐이었습니다. 말하면서 그 이름 모를 상대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당신의 행동을 보고서야 나는 눈치챘습니다. 어쩌면 이별이 곧 다가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당신이 아프던 날, 당신이 나를 보며 키스하는 그 순간에. 나는 이별을 느꼈습니다. 당신 동료의 시선 따위 그 때는 눈치채지도 못했고 그저 당신의 눈만을 보고 있을 때, 그 공허함을 바라봤을 때 이별을 느꼈어요.

 

 

  당신이 피곤에 찌든 눈으로 직장에서 돌아왔을 때, 당신의 친구로부터 어렴풋이 당신의 직장에서 소문이 났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 날 한참을 울었습니다. 온 몸의 물기가 빠져 버리기라도 할 듯이 바닥에 엎어져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비를 맞으며 몰래 눈물을 흘리는 당신을 보며, 당신에게 헤어지자 말했죠.

 

 

  사실 그 때를 아직도 후회합니다. 그 때 조금 더 버텨 볼 걸 그랬습니다. 자신이 제일 싫어한다던 비를 맞으며 비틀비틀 걸어가는 당신을 봤을 때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당신은 알고 있을까요. 묻고 싶습니다. 그때의 내 말을 원망하고 있느냐고. 당신에게 철없이 어리광을 부리던 나를 때때로 떠올리고 있느냐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있잖아요, 투스. 나는.

 

난 아직도 당신을 좋아합니다.

AO털실

구누군

2등 제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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