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우쉽 글, 그림 페어합작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적의 머리 위로 겨눈 데저트 이글은 너에겐 너무 과했다. 그 손에 들기에는 버거운, 괴물처럼 거대한 은빛의 몸뚱아리가 여러번 휘청일 뻔한 걸, 너는 겨우 붙잡고는 차갑게 일갈했다. 다시는 기어오르지 말라, 이 나를 무시하지 말라-이 먼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항상 온순하게 굴며 말도 어설프게 하던 네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래, 쉽게 이성을 날려버리곤 그 뒤에 머리를 붙잡고 후회를 하지. 하지만 네가 한 일들에 잘못된 것은 없었다. 이것도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일 뿐이다. 물론 독하지 못한 너에게는 힘들고 어렵겠지만, 때를 놓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보단 나았다.
너를 기만하던 이들이 얼굴을 새파랗게 만들고 밖으로 도망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미련한 것들. 어째서 자신이 모시는 보스의 진면목을 하나도 알지 못 한단 말인가. 나도 아는 것을, 십 여년이 넘게 지켜 보았다던 저들이 왜 모르는가. 몰래 반란이라도 일으키려던 무식한 인간들이 사무실에 하나도 남지 않았는데도 너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방아쇠에 걸고 있던 손에 유달리 힘이 들어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어깨를 치면 분명 아무데나 총을 쏠 것이다. 몸을 돌리다가 나를 쏠 확률도 있었다. 저 권총의 폭발력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몸을 가만히 두고 이 긴장된 공간이, 시간이 모두 진정하기만을 기다렸다. 기다림은 내가 자신있는 종목이었다. 겉만 보면 팔랑팔랑 가볍고 날아다닐 것만 같은 나였지만-의외로 진득하니 기다릴 수 있는 멋진 남자였다.
이윽고 너는 손을 내렸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올라가있던 마른 어깨가 축 내려왔다. 살짝 숙인 고개, 그리고 연갈색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너의 흰 목덜미를 간질이고 있었다. 순식간에 털을 죽인 새끼 고양이 같아서 나는 웃음이 새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손에 끼고 있던 까만 가죽장갑을 이로 물어 벗고는 손을 쥐었다 펴며 움직임을 자유롭게 했다.
"이야, 우리 보스 무섭네."
"프라이."
"…괜찮아? 먼."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는 것 같아서 나는 눈치껏 빠르게 그의 이름을 뒤에 붙여주었다. 머뭇거리다가 배시시 웃어버리는 얼굴이 나이보다 어려보였다. 천천히 팔을 벌리자 그대로 다가와 내 품에 안착했다. 한 갱단을 이끌어가는 능력있는 보스 치고는 굉장히 마른 몸이었다. 내 품은 여자를 안기 위해 있는 건데, 능글맞게 웃으며 속삭였더니 바람둥이 같은 소리 말라며 핀잔을 들었다. 등허리를 껴안지도 못 하고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자켓의 등 부분만 꽉 손에 쥐고 있었다. 바보 같으니. 꽉 끌어 안으면 누가 잡아 먹는대냐. 아, 내가 잡아 먹겠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득아득 와작와작. 마치 유치한 미국 만화처럼 진저쿠키 같은 너를 한 손에 들고 머리부터 씹어먹는 상상을 했다. 정말로 역겨웠다. 한숨을 쉬며 드러난 맨 손으로 먼의 뒤통수를 가볍게 감쌌다. 부드럽고 폭신한 감각이 손바닥에 퍼져나갔다.
"프라이, 네가 여기 있어서 다행이야."
너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입안이 씁쓸한 게, 담배가 필요했다. 머릿속에 가득찬 쓸데없는 상상, 재미 없는 계획, 혼란스러운 마음가짐-그 모든 것을 회색 연기에 태워 흩날려야만 했다. 그것이 날아가 새하얀 구름이 되든 새파란 비가 되든 우선 나에게서 모든 것이 비워지는 게 중요했다. 너의 믿음이 무거웠다. 신뢰가 무서웠고, 애정이, 동경이-모든 것이 나에게 독이 되었다. 그대로 손을 움켜쥐고 너의 뒤통수를 짓눌러 책상에 쳐박고 싶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 너의 흔들림이 나에게 전이되었다. 나는 조심히 숨을 내쉬고는, 마치 유리 세공품을 만지기라도 하는 양 섬세하게 네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심해, 속삭이는 소리에 너는 가볍게 웃어보였다. 숨을 들이키며 웃는 게 너무나도 천진난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네 머리를 쏘기 위해 준비했던 데저트 이글. 그것을 알면서도 너는 절대 그것을 나에게만은 들이대지 않았다.
멍청한 사람,
멍청한 보스,
멍청한 나,
멍청한 너-.
세상이 온통 멍청한 것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