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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ncing on a mask

 

 

  "끄응..."

 

  비너스는 곤란한 표정으로 금성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새턴이 놀러 와 콘서트에 오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뭔가 생각할 것이 있다며 그를 피하고 다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녀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은 느꼈지만 왜 때문인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던 새턴은 결국 거절당한 아픔을 가지고 콘서트 스케줄 준비를 하러 금성을 뒤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새턴이 가자, 그녀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선 머리를 부여잡았다.

 

  "누굴... 데려가야 하는 거지..."

 

  우주미인 비너스가 고민하고 있는 이유는 우주 전체 무도회 파티에 누구를 데려가야 하냐는 주제였다. 우주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형만 참가할 수 있는 무도회가 아닌, 전체 참석 가능 무도회가 곧 열릴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인간형과 그 밖의 형체들 사이의 차별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던 우주에서는 이례적인 경우였고, 그만큼 '계' 대표로 나간다는 것은 그 '계'의 위엄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간 시간으로 한 달 후. 공지를 받은 건 오늘. 새턴을 데려가자니 마르스가 마음에 걸렸고, 마르스를 데려가자니 마르스의 춤 실력이 못 미더웠다. 어떡해, 서로 맞춰보는 데 한 달은 다 쓰는데. 파트너를 빨리 정해야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데... 그렇다고 파트너 없이 가기는 역시 체면이 안 살고. 진짜 이거 어떡하지-...라고 그녀가 생각하던 차에, 이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마르스가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아무래도 타이밍의 신은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따하하핫! 비너스, 그 소식 들었어? 지구 시간으로... 대략 한 달? 후에-"

 

  급작스럽게 찾아온 마르스의 말에 안 그래도 그가 온 것으로 놀라 있던 비너스의 가슴이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다. 설마, 설마 그 이야기는 아니겠지. 우연히 시간이 겹치는 거겠지? 그녀는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걸며 앞으로 나올 마르스의 대답을 예상했다. 제발, 제발 무도회만은 아니길!

 

  “있는 무도회에서-”

  “안 돼!”

  “어...?”

  순간 싸한 분위기가 감돌며 마르스가 당황했다. 비너스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 이런. 아직 마르스가 뭔지 말도 안 했는데 무조건 안 된다고 해 버리다니. 분명히 뭔가 있다고 생각할 거야. 이러면 안 되는데...

 

  “.. 안.. 된다고..? 그 무도회에서.. 바닥 인테리어를 부탁해서 가게 된 건데..?”

 

  아. 그런 거였구나. 그의 말을 들은 그녀는 얼굴에 전해지는 환한 미소를 자각하지 못한 채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하아.. 다행이네.. 그럼 무도회는 못 가는 거...?”

  “아마도. 우리 샛별이는 갈 거야? 나 힘들어서 못 간다고 새턴 데리고 가는 건 아니겠지? 따하핫!”

 

  역시나. 일이 잘 풀렸다 했더니, 새턴을 데리고 가지 말라는 충격적인 말을 들어버렸다. 그럼 나 혼자 가라는 건가...? 마르스는 이게 얼마나 중요한 파티인지 알고 하는 말인 걸까? 그 이후의 대화는 저 말에 다시 머리가 꼬여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라는 건지, 지금 나보고 파트너 없이 가라고..? 차라리 그 인테리어 하지 말고 같이 파티 가자고 할 걸! 애초에 그냥 마르스를 데리고 갈 걸 그랬나... 어차피 새턴은 콘서트 준비로 바빴을 텐데...

 

  “망신살.. 좀 뻗치겠다..”

 

 

* * *

 

 

  한 달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무도회 장소는 저 멀리에 있는 어느 은하에 위치한 계. 지구와 비슷한 골디락스 행성이 의기양양하게 위치해 있는 곳이었다. 골디락스에 발을 들이자마자 마치 초기의 어스를 방문했을 때의 산뜻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흐읍,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비너스는 파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혼.. 자요?”

  “네, 혼자. 이상한가요?”

 

  오죽하면 입구에서 인원 조사를 맡은 B.H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을까. 우주 미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녀로서 파트너 없이 혼자 왔다는 것은 조금 명성에 해가 되는, 아니 많이 명성을 갉아먹을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은 어쩌다 보니 이렇게 흘러 와 버렸다.

  ‘어쩔 수 없지... 대충 안면도장만 찍고 가면 되나.’

 

  이미 명성은 포기한 상태로 그녀가 참가했다는 소식만 퍼트려주면 될 터였다. 어차피 이런 일로 무너지는 그녀의 아름다움이 아니었으니까. 마르스는 뛰어난 솜씨를 사용하여 적은 인원수와 같이 진행하게 된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도 안 되어 인테리어를 완공하는 기염을 토했다. 완공 뒤에는 휴식을 취하겠다며 화성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있었지만 말이다. 차라리 흐느적거리는 마르스더라도 준비를 시켜서 데려왔다면 그나마 괜찮았겠지만 마침 오늘 어디론가 간다며 사라져 버린 그였다.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눈을 길게 감았다 뜬 비너스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파티장 입구를 통과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분위기는 조용했다. 어라? 주변을 휙 둘러보고서야 그녀는 아무도 센터에 나와 춤을 추지 않고 모두 가장자리 쪽에서 조용하게 와인이나 마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뭔가 이 분위기에 동화되지 않는다면 민폐녀로 찍힐 것만 같은 예감이 비너스를 엄습했다. 결국 그녀도 와인 한 잔을 재빠르게 낚아채 목을 축이는 수밖에 없었다.

 

  ‘... 지구에서 가져온 와인은 아니네? 근처에 문명이 발달한 골디락스 행성이 또 있나. 지구 와인 맛이 아닌걸.’

 

  일방적인 지구의 와인이나 포도주와는 색깔부터 의심스러웠다. 푸른빛 와인이라니, 약이라도 탄 건가? 약간 깔끔하지 않은 뒷맛이었지만 우주는 넓고 넓다며 그녀는 쌓인 감정까지 술과 함께 목으로 넘겼다.

 

  “자, 이벤트가 시작되겠습니다! 다들 가져오신 가면을 꺼내 주세요!”

 

  이벤트? 이게 또 무슨 소린가. 가면을 이용하는 이벤트가 있다는 사실은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갑작스레 들려온 사실에 그녀는 가면을 꺼내는 주변의 인간형 행성을 허둥지둥 붙잡아 물었다.

 

  “이벤트, 이벤트가 있었나요..? 가면이라니 무슨 소리죠?”

  “모르셨어요? 준비 제대로 안 하셨나 보다. 오늘 가면 쓰고 파트너 찾는 이벤트가 있잖아요? 설마 파트너도 안 데려오신 건 아니죠?”

 

  탄산처럼 톡 쏘아오는 행성의 말에 그녀의 안색이 방금 들고 있던 와인보다 더 파래졌다. 어쩌지. 파트너도 없는데다가 가면도 없는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소식이었다. 이 정보통 비너스가 이런 소식조차 듣지 못했다고..? 비밀스럽게 알려지던 거였나? 설마 상인이 주최한 파티인가, 이거? 상인단 이용해야 하는 거였어?

  그녀의 머릿속이 어지러이 정리가 되지 않을 때, 갑자기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며 모두가 이리저리로 흩어졌다. 떠밀리는 인파에 비너스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이미 체면은 포기해버린 상태로 휘말리고 말았다. 반쯤 풀린 동공으로 그저 물결처럼 움직이고 있을 때, 귓가를 파고드는 말 한 마디가 들려왔다.

 

  “이런. 샛별이 이렇게 휘둘리고 있으면 어떡해?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신데?”

  “어..?”

 

  붉은 머리칼. 오랜만에 핵을 떼어버린 모습을 보았다.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차림으로, 멋들어지게 장식된 하얀 가면을 쓴 마르스가 주황빛이 감도는 깃털이 박힌 가면을 건네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인파가 마치 기적처럼 갈라지며 말이다.

 

  “뭐..야, 이거..?”

  “우리 샛별이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이벤트, 랄까? 오랜만의 무도회인 대신 내가 다 구슬렸지. 어때? 남자친구 능력이?”

 

  장난스러운 말투 따윈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눈앞에는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한 명 있을 뿐이었기에. 그의 손에 들린 가면을 조심스럽게 받아 든 비너스가 주섬주섬 가면을 썼다. 살랑, 바람이 부는 듯 했다.

 

  “자아, 그럼.”

 

  가실까요, 여왕님.

  마르스가 비너스의 손을 살짝 붙잡더니 이내 능숙한 스텝을 밟으며 중앙으로 사르르 나아갔다. 부드럽게 춤을 추며 주변의 환호를 받던 그들은 이내 음악이 멈추자 춤 또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뭐지..? 고장인가?”

  “그럴 리가요.”

 

  그는 싱긋 웃으며 세게 바닥을 쿵, 하고 밟았다. 그러자 언제 준비한 건지, 바닥이 밝게 빛나며 한 순간 폭죽이 터졌다. 감동을 금치 못하는 비너스를 보며 마르스는 마치 바람이 불듯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휘감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끝이 아니랍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리 없으니까요.”

 

  빛나던 바닥은 분홍빛이 가득 맴도는 가면이 그려진 배경으로 바뀌었다. 한순간 인파가 모두 몰려나와 자신의 파트너와 춤을 추었고, 중앙의 가면에는 그들 한 쌍만이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노래는 고조를 향해 가고 있었고, 분위기는 이보다 좋을 수 없었으니까-

 

  “이런 공간에서 춤 본 적 있어?”

  “... 있을 리가.”

  “그래? 그렇다면-”

 

  이번이, 너의 기억에 남기를.

 

 

 

* * *

 

 

 

  “따하핫! 역시 나야!”

  “진정해, 마르스.. 이벤트는 최고였으니까. 이제 가서 쉬자.”

 

  이벤트가 끝난 뒤, 마르스는 다시 원래의 장난스러운 그로 돌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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