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우쉽 글, 그림 페어합작
하늘에서 눈이 내려왔다. 아늑한 저녁에 아이들은 모여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몇 년 전 유행했던 드라마의 재방송이었다. 드라마를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 투스의 말에 다른 의견이 없던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인 것이었다. 드라마의 인물들은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 눈사람은 연인의 모습을 닮았다. 눈사람들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연인들의 모습도 가까워졌다. 조심스럽게 거리가 좁아졌고, 그들의 눈도 점점 내려갔다. 하나. 둘. 셋. 입술이 닿았다. 텔레비전의 상황에 투스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서 웬즈의 눈을 가렸다. 먼은 얼굴이 잔뜩 붉어진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상상 속에서 남자 주인공은 본인이었고, 여자 주인공은 선이었다. 둘은 밖의 내리는 눈 속에서 작은 눈사람을 만들었고, 키스했다.

그 상상을 깨운 것은 선의 투덜거리는 말이었다. 어디에 그런 남자 없나? 입술은 삐쭉 앞으로 나왔고, 자신을 바라보는 먼을 발견한 선은 피식 웃으면서 ‘먼충이. 너 말고.’ 라면서 먼의 상상을 깨트렸다. 먼은 양손을 뻗어 힘껏 부정하면서 웃긴 어벙한 표정을 그렸다. 아니라고, 그런 생각 하지 않았다고 바보 같은 말을 내뱉었다. 선은 그 말에 더욱 의심스러운 표정을 하다가 피식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인은 잠꾸러기라는데 이만 자러갈게.’ 그녀의 말을 시작으로 삼삼오오 거실을 떠났다. 거실엔 먼만이 남았다.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침대에 누워 이불 안에 들어가 데굴데굴 굴렀다. 오른쪽으로도 힘껏, 왼쪽으로도 힘껏 침대의 양쪽을 왔다갔다 거렸다. 왼쪽으로 굴러가다 그녀는 벽과 닿았다. 벽에 머리를 툭툭 가볍게 박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벽 너머에는 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굴러서 가장 침대 끝으로 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먼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정말로 놀랍게도.

솔직히 이야기해서 그녀에게 있어서 먼은 자신이 챙겨야 할 어리숙한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 먼은 구석에서 혼자 있었고, 자신은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그 뒤 자신을 향한 먼의 애정은 어느 순간부터인지 공기처럼 물처럼 당연시되어있었다.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자신만을 쳐다보는 맹목적인 먼의 눈길이 좋았다. 자신의 말 하나에 어쩔 줄 모르는 그의 반응도 욕심이 많은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웠다. 수많은 악담에도 이제는 무덤덤한 저 요일의 태연한 표정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는 어쩌면 본인뿐이라는 생각에 웃었다. 그리고 이 어리숙한 애정의 대상으로만 보이던 요일이, 남자가, 자신을 지킨 것을 볼 때 세상이 변한 것을 깨달았다.
평화롭던 일상은 깨졌고, 우리는 무력하게 우주의 흐름에 몸을 담가야 했다. 평화가 찾아오고, 나중에 흘러가는 말로 들은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고 하나,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자신을 지켜주었던 먼. 그의 모습이었다. 행복하게 끝난 지금에 있어서 남아있는 것은 그것 뿐이었다.

수많은 공장 토끼. 사납게 날을 세운 그의 모습. 첨예하게 세워진 그는 내가 부르는 한 마디에 깨졌다. 그리고 나는 충족감이 채워졌고, 그 만족감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친 그의 모습과 다가오는 그의 입술에 나는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녹아들었고, 숨과 숨이, 입술과 입술이 만나려는 순간 현실로 끌고 온 것은 루나님이었다. 깨워진 현실은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먼과 앞으로 먼이 달라질 것을 자각하게 되었고 나는 밀려오는 감정에 그대로 휩쓸렸다. 다시 이불을 뻥뻥 찼다. 그때의 일만 생각하면 지켜줘야 하는 상대가 날 지켜준 모습과 그 뒤로 바뀐 먼의 모습이 떠오른다. 바보 같았던 먼충이로 평생을 지낼 것 같았는데.
나는 밖으로 나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눈은 내리지 않았다. 발목까지 쌓인 눈은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만들었다. 나는 깨끗한 눈 위에 발자국을 만들며 걸어가다가 먼의 방 앞에 도착해서 눈을 뭉쳤다. 뭉친 눈을 던져서 먼의 창문을 두드렸다. 먼은 어느 녀석의 장난인지 짜증이 나는 모습으로 창문을 열어 밑을 바라보다가 문을 두드린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에 놀라 입을 쩍 벌렸다.
“내려와. 먼”
녀석은 그대로 창문을 열어놓은 채 사라졌다. 녀석을 부르는 호칭이, 먼충이에서 먼으로 바뀐 것을 저 눈치없는 요일은 모를 것이다. 대책없는 생각에 한숨을 내 쉬었는데 금세 눈 앞에 녀석이 나타났다. 나타난 녀석은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외투 하나 걸치지 않았다. 창문에서 보이던 모습 그대로, 급히 내 부름에 내려온 듯 얇은 맨투맨티와 바지만을 그대로 입고 있을 뿐이었다. 딱 하나 변한 모습이 있다면, 먼의 손에 들린 붉은 목도리. 녀석은 자신은 생각도 안하는지 내가 추워 보인다며 내 목에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어쩌면 귀 색과 목도리 색이 같아졌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왜 불렀어? 선?”
먼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자신만이 담겨있었다. 하늘에는 달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미리 만들어 놓은 눈사람을 보여주었다. 먼은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나를 볼 뿐이었다.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눈사람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듯 선은 오른손으로는 자신의 눈사람을 왼손으로는 먼의 눈사람을 들어 이야기를 진행했다.
-지켜주던 눈사람이 자신을 지켜주던 순간, 아름다운 눈사람은 무언가가 변했다고 생각했어요. 하나. 둘. 셋. 눈사람은 서로 다가왔고, 그대로 -
선의 말은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손에 들려있던 눈사람은 그대로 바닥으로 놓였다. 그리고 달이 지켜보는 채로, 입과 입이 인사했다. 겨울이 따뜻했다.

관계의 재정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