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우쉽 글, 그림 페어합작
주피터와 덜스. 아버지와 아들. 목성의 주인과 그의 후계자.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들은 생각해보면 꽤 많은 편이었다. 본인들이 서로 거부했을 뿐. 서로 정답게 지내는 다른 요일, 수호성들과는 달리 그들은 사이가 나쁜 편에 속했다. 낯간지러운 애정 표현을 잘 못 하는 주피터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주피터의 과격한 행동을 곧이 곧대로 믿어 주피터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덜스의 영향 때문이기도 했다. 최강체로 불리우는 아버지와 최약체로 평가받는 아들. 그들 사이에 트러블이 없는 게 더 이상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주피터님… 저, 덜스님께 일이 생긴 모양인 듯 합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후계자시니 보고 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 덜떨어진 스레기 녀석이 그렇지, 뭐. 냅둬라. 나말고도 다른 녀석들이 나설 게 뻔하지 않냐.”
무관심인 걸까. 굳은 믿음인 걸까. 가니메데의 말에도 주피터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책을 넘기기만 했다. 그런 모습에 가니메데는 결국 방을 빠져나갔고, 가니메데가 나감과 동시에 주피터는 책을 덮었다. 귀찮은 자식. 주피터의 낮은 목소리가 방을 작게 울렸다. 알고 보면 그 어떤 수호성 중에서도 자신의 후계자를 많이 챙겨보는 게 주피터였다. 물론 실질적으로 챙기지는 않지만. 주피터는 그대로 덜스의 모습을 영상으로 비췄다. 귀찮음이 잔뜩 묻어나오는 모습이었지만 눈만큼은 빠르게 덜스를 찾기 위해 화면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 약골 녀석.”
약하다. 더럽게 약하다. 자신의 후계자라는 게 맞기는 한 건지, 싶을 정도로 약하기만 한 후계자다. 지금도 봐라. 고작 공격 하나를 제대로 막지 못 했지 않나. 아마 다른 요일들과 행성들이 없었더라면 나약하기만 한 목숨, 몇 번이고 더 잃었을 게 분명했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에 주피터는 한숨을 푹 내쉬곤 깊게 패인 미간을 꾹꾹 눌렀다.
‘약한 게 싫어요.’
눈을 감고서 한숨을 푹 내쉬던 와중 귓가에 들려오는 희미한 음성에 주피터는 빠르게 고개를 들었다. 덜스의 중얼거림이었다. 어느새 자신의 방에서 홀로 웅크린 채 중얼거리고 있는 모습이 주피터의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지금껏 자신의 말로 인해 우울해하거나 분해하는 모습은 종종 본 적 있으나 뭔가 다르다. 이번엔,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든다. 완전 직감일 뿐이지만 자신의 직감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언제나 녹빛 머리를 노란 끈으로 묶었던 덜스는 머리까지 풀어헤친 채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약해요. 너무 약해요. 나는 왜 약한 건가요.’
탓하는 목소리가 주피터의 머리를 강하게 치고 갔다. 주피터를 탓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말은 주피터를 탓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 담겨진 의미는 자책이었다. 자신의 약함을 욕하고 있었다. 멍청한 자식. 주피터는 자신의 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으며 중얼거렸다. 마음마저 나약한 후계자였다. 더 강해지려 노력하면 될 것을, 어째서 약함을 탓하는 건가. 태초부터 강했던 목성의 주인인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약함이었다.
“가니메데. 잠시 지구로 다녀오마.”
“잘 다녀오십시오. 주피터님.”
늘 입던 망토를 집어들다가, 이내 필요없다고 판단 되어 내려놓으며 말하자 어느새 곁에 다가온 가니메데가 작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했다. 평소와는 다른 듯한 후계자의 상태에, 주피터는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의 후계자고, 아들이다. 약한 놈이라고 하여 어찌 신경을 안 쓸 수 있겠는가. 지구에 있을 땐 대부분의 시간을 덜스의 정원에서 보냈던 그는 어째선지 덜스의 방이 낯설게 느껴지는 듯 하여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걸어갔다.
“덜떨어진 스레기 같으니.. 응? 무슨 일이냐.”
[덜스를 혼자 내버려둬. 지금 가봤자 오히려 더 나빠질 거야 :(]
제 딴에는 노크라도 하려는 모양이었는지 주먹을 든 채 문을 두드리려던 주피터는 하얀 손가락이 자신을 툭툭 건드림과 동시에 주먹에 쥐고 있던 힘을 약간 풀었다. 손가락의 주인인 어스는 의아한 표정의 주피터에게 자신의 칠판을 보여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확실히 현재 자신의 약함을 탓하고 있는 덜스에게, 강함밖에 모르는 자신이 가봤자 좋을 건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주피터는 덜스의 방, 바로 옆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얼굴을 마주해선 좋을 게 없지만, 옆에는 있어줘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약한 게 싫습니다. 왜 나는 강해질 수 없는 겁니까. 어째서... 강해지고 싶어요. 누구보다, 더.’
그 말에 주피터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벽 하나를 두고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부자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아버지의 강함을 부러워하여 강해지고 싶다는 아들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결국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주피터의 눈이 아래로 향했다. 얼굴은 어째선지 슬픈 낯빛을 띠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망할 후계자 같으니라고.”
그가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벽 너머로 약간 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벽에 기댄 채 떨고 있다가 들리는 목소리에 놀라 어디 한 곳은 벽에 부딪힌 게 분명했다. 주피터는 그러든 말든 자신의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나약한 놈. 자신의 약함만 탓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냐. 강해지고 싶으면 강해지려 노력해야지.”
주피터의 말이 이어질 수록 덜스의 눈꼬리에는 방울방울 눈물이 맺혀갔다. 주피터가 위로해주러 온 걸지도 모른다던 헛된 희망은 이미 산산조각 나 흩어져버린지 오래였다. 결국은 자신의 약함을 탓하고 있을 뿐 아닌가. 울컥, 속에서 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에 덜스가 몸을 웅크렸다. 자신을 보호하듯,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약한 후계자는 필요 없다. 목성은 약한 녀석이 계승할 만큼 만만하지 않다.”
덜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퉁명스레 한 말이지만, 그 속에 담겨진 미안함과 다정함이 느껴져서, 덜스는 결국 마지막까지 눈꼬리에 매달려 있던 눈물을 흘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 아들. 그 단어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언제나 듣는 말이라곤 거친 말 뿐이었으니 더더욱 낯설고, 그만큼 감동을 주는 말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아까와는 다른 감정이 차오르는 듯 하여 덜스는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고 소리 죽여 울었다.
“아, 버지. 아버지...”
물기를 머금은 말에 이번엔 주피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선 뒤를 돌았지만 보이는 건 둘 사이를 가로 막는 온통 하얀 벽 뿐이었다. 주피터는 조심히, 원래 자세로 돌아와 벽에 기대었다. 아버지.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게 언제였던가. 잠시 눈을 감고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던 주피터는 이내 눈을 느릿하게 뜨며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평소엔 어떻게 해도 안 나오던 말이 왜이리 잘만 나오는지 주피터 본인조차 이상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비록 마음에 드는 모습은 아니지만, 자신의 후계자는 이제 평소대로 바보같이 웃을 수 있으리라.
한 명은 울고, 한 명은 편안히 미소 짓는다. 하지만 감정은 서로 똑같았다. 후련함. 내일이면 언제나 그랬듯이 투닥대는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그게 그들에게 있어선, 가장 평화로운 일상이었으니까.
악연과도 같았던 그들의 인연의 끝은 새로운 인연의 시작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다시 끝이 오고, 새로 시작하고. 그들의 인연이 악연이었던 것만큼, 그들은 쉽게 끊어지지 않을 관계였다.
악연과도 같았던 인연의 끝은 그 무엇도 아닌 눈물 뿐이니. 그들의 인연도 눈물로 끝맺는 걸까.
악연의 끝
주피터님처럼.
하지만, 대신 강하게 만들어주마. 뭐... 어찌됐든 너는 아들이니까.

강함만 강요해서. 그래도 많이 아끼고 있다.
약한 아들이라,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