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우쉽 글, 그림 페어합작
"이번엔 또 무슨일 이시길래……."
"아, 덜스님."
가니메데의 급한 연락을 받고 태양계를 가로질러 날아온 덜스, 주피터님이 뭔가 이상이 생겼는지 방문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아서 날아왔지만 덜스는 썩 내키질 않아했다. 덜스는 이전에도 급한 일 이라고 마구 불러대는 주피터의 연락을 받고 급히 날아갔었지만, 그 일이란 건 자려고 누웠으니 불 좀 끄라는... 그런 전력이 있었기에 주피터를 신뢰할 수 없었다. 그냥 푹 잠들게 할만한 작은 아로마화분을 들고서 덜스는 위성들과 마주했다.
"그게… 일을 하실 시간인데 문을 잠그고선 열어줄 생각을 안 하십니다, 오늘도 일을 거르시면 곤란한데… 그런데 조금은 이상하더라고요, 목이 쉬셨는지 평소보다 가느신 거 같기도 하고…."
눈을 감고 고심하는 가니메데를 무심히 바라보던 덜스는 픽 웃으면서 능청스럽게 방문을 덜컥거리고는 혼잣말하듯 가니메데에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급한 일이라고 해 봤자 또 '장판의 불좀 켜줘' 라던가, '방의 불좀 켜줘' 같은걸 시키실게 분명한데… 굳이 내가 와야 할 일이 아니다에 제 특제 허브티를 걸도록 하죠~"
베싯베싯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주피터의 침실 문을 쾅쾅 두들겼다. 하지만 주피터의 방 안은 고요하기 그지없었고, 덜스는 오늘따라 심하단 눈치로 혀를 쯧, 하고 차더니 침실 문을 점점 세차게 두드리며 주피터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주피터님! 거기 계신 거 압니다! 어서 여시라고요!"
하지만 여전히 방 안은 잠잠했고, 지나치게 조용한 주피터가 내심 조금은 걱정이 되었는지 문을 두드리는걸 그만두고는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붙잡고는 조심스럽게 돌렸다. 방 안은 쥐죽은듯이 고요했었기에 장난스러웠던 태도는 점차 진지해졌고, 조심스럽게 방 안을 살폈다. 하다 만 서류들이 가득한 책상 너머로 가운대가 봉긋 솟아 올라있는 침대가 보였고, 덜스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이불을 붙잡았다.
"들…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분노의 찬 주피터의 목소리, 침대의 봉긋 솟아오른 곳 으로부터 들려왔다. 그러나 평소보다 매우 가늘디가늘었기에 덜스는 물론 가니메데까지 모든 위성들이 당황을 하고 움찔했다.
덜스는 조심스럽게 침대 쪽으로 다가가 주피터가 덮고 있는 이불을 붙잡고 당겼지만 주피터는 이불을 꽉 붙잡고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나중에!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일단 좀 내버려 둬! 경고했어!"
그러나 악력은 평소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덜스는 거리낌없이 이불을 강하게 잡아채었고, 이불에 가려졌던 주피터의 모습이 드러났다.
마치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듯한 작고 여린 꼬마 같은 외모에 젖살이 빠지지 않은듯한 통통한 볼, 누가 봐도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던 주피터의 모습을 보고는 모두 같은 반응으로 일관하면서 주피터와 서로의 눈을 번갈아 보면서 바라보았다, 잠시간 시간이 멈춘 듯 멍해있던 덜스는 고개를 부르르 떨고선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먹다 만 달떡조각들, 빈 물병들과 바닥에 널브러진 주피터의 옷, 대충 전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들은 당황한듯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고, 모두가 당황한듯하자 주피터 역시 무언가 변명을 하려고 자리를 박차고 침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것은 주피터의 실수였다. 주피터는 작아진 몸 때문에 맞는 옷이 없었고, 이불로 애써 몸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던 그는 급하게 행동했고, 일어나서 모두에게 무언가 설명하려고 하는 순간 긴 이불자락을 밟고서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고꾸라지듯 정면으로 자빠져버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것을 보고 있던 넷은 웃음을 참지 못했고, 주피터는 고개를 푹 숙이고 도저히 들지를 못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선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상황파악은 대강 되었지만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걸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크흠… 흠! 일단… 좀 가리는게…."
침묵을 깬 건 덜스였다. 유로파와 이오, 가니메데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던 그는 멋쩍은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가니메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주피터의 망토를 집어 든 가니메데는 이윽고 주피터의 몸을 마치 로브를 입히듯 감싸주었고,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뚱한 얼굴을 하고서는 그녀의 품에 안겨있다. 입술이 한껏 튀어나와있는 주피터의 입을 꾹 눌러주면서 그를 진정시켰다. 가니메데는 가만히 주피터를 들여다보자, 의외로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맹하게 가니메데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 반면, 가니메데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모두가 있는 쪽으로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누가 방법을 찾을 때까지 주피터님을 돌봐야 할꺼같은데…."
그 말과 동시에 모두의 얼굴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모두가 아이가 된 주피터를 응시하는 듯 보였지만, 이오는 마치 문워크하듯 조용히 뒷걸음질 치면서 누가 지적할 틈도 없이 빠르게 방을 벗어났다.
가니메데가 고개를 돌려 이번엔 유로파와 눈을 마주치자, 유로파는 황급히 고개를 가니메데를외면하더니 주피터의 책상 위에 놓인 서류뭉치를 몽땅 집어 들고서는 눈길도 주지 않고선 황급히 방을 나서버렸다. 남은 것은 덜스 뿐. 하지만 상황의 심각성만 중요히 생각하던 그 였기에 나머지 위성들이 모두 자리를 피한 것 조차도 눈치를 채질 못하고 있었다.
"… 덜스님."
"……네?"
갑자기 말을 하자 덜스는 화들짝 놀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다른 위성들이 모두 떠났다는걸알고선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가니메데는 한숨을 쉬면서 주피터와 덜스를 번갈아 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타이탄과 약속이 있어서… 하루만 잘 부탁합니다."
가니메데는 곧바로 주피터를 바닥에 내려놓고선 그대로 포탈을 이용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덜스가뭐라고 말릴 틈 도 없이 빠르게 빠져나가 버렸다. 주피터와 덜스 모두 같은 표정으로 포탈이 있던 자리를 빤히 바라볼 뿐 이었고, 그리고선 뭐라고 형용하지 못할 침묵이 길지 않게 이어졌고, 한숨을 푹 쉰덜스가 주피터를 품에 안고선 침대 가장자리에 가만히 앉아 주고는 자신은 무릎을 꿇으며 주피터와눈높이를 맞추고선 마주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길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는지 주피터는 헛기침을 하고선덜스에게 물었다.
"크흠, 흠…… 시금치, 뾰족한 수는 가지고 있긴 한거냐?"
하지만 덜스는 능청스러운 그의 태도가 영 못마땅했다. 이를 한번 뿌득, 하고 갈더니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먹다만 달떡조각들을 주워들고선 주피터의 눈 앞에서 흔들거리며 비꼬듯이 말했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주워 드시고선 아무일도 없을 거라 생각하셨던겁니까?"
짜증을 내는 덜스, 하지만 주피터는 그런 덜스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언짢은 표정을짓고선 덜스를 째려보더니 이마를 쿡쿡 찌르면서 핀잔을 주듯 말했다.
"내가 먹든 말든 상관 없잖아, 너는 어서 날 되돌릴 궁리나 하지 그러냐?"
덜스는 피식, 하고 웃더니 주피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맞잡은 손을 흔들며 약 올리듯 주피터에게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작아져서~ 힘은 있으시겠습니까? 오늘은 제가 보호자니 조용히 말이나 잘 들으세요,"
자극적으로 다가온 덜스의 한마디, 주피터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그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선 말했다.
"… 지금 내가 우스워 보이냐?"
땍땍 짜증내면서 덜스에게 뭐라 하는 주피터, 그러나 덜스는 피식 웃기만 하더니 주피터를 끌어 안고선머리를 쓰담 거리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말했잖아요, 전 보호자. 주피터님은 지금 보호대상, 누가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요?"
평소의 한을 풀듯 최대한 능글거리게 행동하면서 그대로 주피터에게 갚아주듯 행동했다. 당연히 짜증나는 그의 태도에 주피터의 미간은 구겨질 대로 꾸겨졌다. 입꼬리가 올라갔다가 파르르 떨리더니 그대로 깊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덜스의 머리를 쓰다듬듯 넘겨주자, 마치 자신에게 굴복한듯한 태도를 보이는 주피터를 보며 덩달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장난스럽게 물었다.
"어이구…… 지금 보여주시는 건 의지하겠다는 증거인가요?"
덜스의 태도를 빤히 바라보던 주피터는 되도 않는 말이라도 들은 듯이 피식 웃으면서 뒤통수를 꽉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썩소를 짓는 주피터, 이윽고 굉장한 섬광이 방 안을 가득 채워버렸다.










"영원히 쉬게 해주는 애증의 증거다."
주피터는 전기 때문에 까맣게 변해버린 덜스를 한심한 듯이 내려다 보았다. 덜스의 머리채를 부여잡으며 포탈을 열고선 끌고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주피터는 잠깐 멈칫했다. 방금 전까지 덜스 중얼거린 보호자라는 말,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며 주피터로부터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눈을 감고서 턱을 괴고선 사뭇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덜스한번, 이미 열린 포탈 한번, 덜스한번, 포탈 한번, 그러고는 눈을 감도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정 반대의 방향에 살짝 손짓을 하자, 이번엔 푸른 빛이 섞인 포탈이 서서히 열고서 그대로 그 안으로 덜스를 끌고 들어갔다.
* * *
따사로운 햇살이 덜스의 눈가를 간질였다. 마치 깊은 잠을 잤다가 깨어난 것처럼 부스스 눈을 뜨자 주변으로 부터는 시끄러운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상황파악이 아직 되지 않은 듯 멍한 정신상태로 주위를 둘러보자, 단란한 가족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엄… 주피터님?"
"너, 보호자라면서."
상황파악이 되질 않은 덜스의 질문 따위 깔끔하게 무시하면서 되려 덜스를 역으로 몰아붙이며 물었다. 얼떨결에 덜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대답을 듣는둥 마는둥 손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고, 무심코 그곳을 올려다본 덜스의 눈에는 놀이동산 간판이 떡 하니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멍청한 표정을 짓는 덜스, 한숨을 쉬면서 손을 까딱였다. 덜스는 그제야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었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핀 주피터는 볼을 붉히면서 덜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부터 퍼레이드가 시작됩니다, 어린이 여러분은 모두 티 익스펜던스 앞으로 모여 즐겨주시길 바래요~ 환상의 나라…"
퍼레이드. 모든 요일들과 함께 놀러왔을때 한번 본 기억이 있었다. 흔하고 진부하지만 충분한 눈요기거리였고, 무엇보다 그때 웬즈가 보여준 반응을 덜스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여느 때보다 반짝이는 눈으로 화사한 퍼레이드 차량들을 올려다 보았고, 그 무엇보다 순수했었다. 그리고 지금의 주피터라면 꼭 좋아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덜스는 주피터를 부르려고 했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자 어디선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당황해서 주피터를 찾으려고 했지만 이미 그는인파속으로 사라진 후 였다. 그제야 안내원의 방송을 곱씹어 보았고, 자신이 앉아있던 곳이 티 익스펜던스… 즉, 퍼레이드 장소 바로 앞 이었다. 안전관리 경비원들은 이미 관중들을 모두 통제하고 있었고, 그 앞에는 인파가 가득했다. 덜스는 거리낌없이 인파속을 헤치며 주피터를 찾기 시작했다.
"주피터님!"
하지만 덜스는 인파를 밀치며 그 곳을 찾기엔 힘이 부족했다. 지나가려고 해도 퍼레이드에 눈이 팔려 누구 하나 덜스를 신경쓰지 않았고, 결국 밀쳐지고 또 밀쳐져 원점으로 돌아와버린 덜스는 절망했다.
"주피터… 님…."
잠깐 한눈을 팔아버렸을 뿐인데, 단지 그것뿐인데. 그 실수 하나에 주피터는 온대 간대 없이 사라져버렸기에 자책은 더욱 컸다. 화사한 퍼레이드 현장과의 분위기와는 그야말로 정 반대였다. 덜스는 공황상태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덜스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오늘 보호자였고, 그를 지켜줘야 할 대상이라고 자랑스럽게 호언장담했었다. 그러므로 덜스에겐 주피터 찾을 필요, 아니. 그걸 넘어선 의무가 있었다. 몸처럼 마음도 어려져 울고있는 주피터를 상상하자 덜스는 더더욱 포기 할 수 없었기에 힘겨운 몸을 이끌며 그는 이곳 저곳을 찾으러 돌아다니며 끝까지 주피터를 찾기로 했다. 그는 페스티벌의 관리직원에게당당히 걸어갔다. 그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저기, 미아신고를 하려고 하는데…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덜스가 심각한 얼굴로 묻자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여직원은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
"혹시 마지막으로 본 곳은…"
그녀가 주피터의 신상에 대해 물어보았다. 덜스는 성심 성의껏 답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뜬금없이 시작된 또 다른 방송에 덜스는 멈칫 했다. 그리고 덜스와 여직원은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을 찾습니다. 주피터군이 보호자인 덜스씨를 애차게 찾고 있으니… 곧바로 미아 보호소로…"
뜬금없었다. 뜬금없어도 너무 뜬금없었다. 멍하니 스피커를 응시하던 덜스는 애써 웃으면서 여직원에게 대답했다.
"… 찾았네요,"
너무나도 뜬금없는 방송이었기에 여직원도 실소했다. 그녀 역시 애써 웃음을 참더니 덜스에게제안했다.
"음… 미아 보호소로 데려다 드릴까요?"
말없이 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엇보다도 무안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그였고, 정문에 존재하는 미아보호소까지 가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들 수 없었다.
미아보호소 안에 유일하게 딱 한명, 주피터만이 홀로 앉아있었다. 오른손엔 아까 받은 풍선을 들고 있었고, 왼손엔 언제 받았는지 막대사탕을 할짝거리고 있는 주피터.

걸어 들어오는 덜스를 보고 한숨을 푹 쉬더니 뚜벅뚜벅 그에게 걸어가면서 한심하듯이 말했다.
"덜스, 날 두고 놀다 오기나 하고… 보호자 자격이…."
주피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덜스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뜨거운 포옹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다행이에요… 다행… 다행…."
덜스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윽고 눈물은 주피터의 어깻죽지에 뚝뚝 흘러내렸고, 깜짝놀란주피터는 가만히 자신에게 안긴 덜스의 등을 토닥였다. 뜨거운 재회를 가만히 바라보던 직원은미소지으면서 그를 축하해 주었다.
"아들이 정말 의젓하네요. 서로 호칭도 특이하…고… 요. 하… 하하…."
애써 웃으면서 따뜻한 재회에 박수를 쳐 주었다. 주피터는 맹하니 그들을 바라보더니 그들에게 반박하려고 했다.
"무슨소리냐, 얘가 내…."
그와 동시에 덜스는 주피터의 입을 꽉 막아버렸다. 뒤통수를 꾹꾹 누르며 주피터를 강제로 인사하도록 한 후 밖으로 황급히 뛰쳐나왔다.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간 모두가 이해 못할 소리를 할 것 같았았기에그는 굉장히 급박했다.
밖으로 나온 덜스는 얼굴을 찌푸리고 잔소리를 시작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를 두고 가신건…."
주피터를 내려다 보자 그는 얼어붙었다. 주피터는 고개를 숙이고 반성하는듯한 모습이었다.
"그냥… 계속… 걷고 있었는데… 너는 안보이고… 나 혼자… 이런 약한 몸으로…."
그는 겁을 먹었던 모양이었다. 처음 오는 곳에 홀로 남겨져 있었던 그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갔기에 그에게 무작정 화를 낼 수 만도 없었다. 띄엄띄엄 말을 이어나갔다.
"… 미안해… 미안…해… 나 때문에 더 놀지도 못했었고…."
고개 숙이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잔소리 하기에도 미안한 상황이었다. 마음이 약해졌는지 덜스는 어쩔 줄 몰라 했었지만, 이윽고 그를 꾹 안아주면서 토닥였다.
"아직 폐장까진 많이 남았으니까요… 더 놀면 되잖아요. 네?"
그를 평소처럼 바보같이 밝게 웃으며 주피터를 끌어당기며 다시 놀이공원 안으로 향했다. 주피터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그를 따라갔다. 방금 전까지 울고 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오히려 그는 피식웃었다.
"꽤나 의젓하네, 안심해도 되겠어."
하지만 걷는 것에 집중하던 덜스는 미처 듣지 못했다. 보호자로써 주피터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에 최대한 노력하는 듯 했다.
그와 동시에 주피터의 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피터가 주머니에서 꺼내 전화를 확인했다,가니메데였다.
"왜."
전화를 받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가니메데의 딱딱한 말이 흘러나왔다.
"루나님으로 부터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달떡을 받았습니다. 지금 가져다 드릴까요?"
주피터는 자신을 끌고 가던 덜스를 잠시 동안 올려다보면서 고민하는듯한 표정이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고, 가니메데에게 대답했다.
"나중에."
신이 난 덜스가 귀엽다는 듯 피식 웃더니 이어서 말했다.
"내가 약한 척을 좀 해 봤거든? 그런데… 보호받는 기분이 꽤 괜찮더라고."
전화기를 끊고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또 다른 안약통을 꺼내들더니 이번에도 뒤로던져버리고선 덜스를 계속해서 따라갔다. 아직 둘에게는 즐길 여유가 많이 남아있었다.

"… 여기서 나랑 놀자."
그렇게 말한 것도 부끄러웠는지 눈을 감고 고개를 푹 숙였다. 평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그의 태도를 본 덜스는 세어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하지만 완전히 웃음을 숨길 수 없었고, 그럴수록 주피터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주먹을 꽉 쥐면서 수치스러워 하는 듯 했다.
"평소답지 않게 왜 그러세요, 네? 주피터님?"
평소와 너무 이질감 느껴지는 주피터의 모습에 얼굴을 돌리고 입을 가리고 웃었다가 다시 한번 주피터를 향해 돌아보았다. 하지만 덜스의 눈에는 정말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주피터가 보였었다. 주피터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으며, 덜스에게 당하는 유래 없는 수치에 고개를 숙였다. 이를 꽉 물고어린아이가 꾸중을 듣는 모양새로 울먹이는 듯 하더니, 몸 뿐만 아닌 마음도 아이가 된 것처럼 닭똥과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시선이 급작스럽게 쏠리기 시작한다. 아까부터 상황을 지켜보던 어른들이 숙덕이면서 덜스를 향해 비난의 눈길을 쏘아붙였다. 형이 어린 동생에게 어떻게 저렇게 심하게 대할 수 있는 건가, 등등 여러가지 비난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당황스러운 덜스는 주피터를 말리기 시작했다.
"알았으니까! 알았으니까요! 울지 마세요! 제가 곤란하다고요!"
그와 동시에 눈물을 그치는 주피터, 가리고 있던 손에 들고 있는 안약을 쿨하게 뒤로 던져버렸다.
멍하니 버려진 안약을 바라보더니 분하다는 듯이 이를 까득 물었지만 약속은 약속이었기에 어쩔 수없이 매표소로 향했다. 비어가는 지갑과 함께 한숨을 푹 쉬는 덜스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깊게 느껴졌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놀이공원 안으로 입성한 주피터. 덜스의 얼굴은 그와 정 반대의 얼굴이었다. 마스코트들이 반갑게 풍선을 나눠주는… 그야말로 아이들의 천국같은 모습 이었다. 인형은 자연스럽게덜스의 손을 잡고 놀이공원에 입장하고 있는 주피터에게 풍선을 권해주었다.
"환영합니다~ 어린이 여러분~ 모두의 꿈과 희망이 넘쳐나는…"
하지만 인형이 권하는 풍선을 경계하는 주피터.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고, 손을 맞대려고 하지 않는 주피터를 빤히 바라보던 덜스는 주피터의 손을 잡으며 인형 옷과 손을 잡도록 도와주었다. 놀란듯한 눈으로 덜스를 올려다 보았고, 주저하던 주피터는 인형옷의 선물을 받았다. 전혀위험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느껴지는 따뜻함에 묘한 감각을 느끼고는 볼이 불그스름하게 상기되었다. 작은 인형 하나에 흥분하는 모습은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면 평소와 다른 느낌에 위화감과 동시에 귀여움을 느꼈을 것이다.
"흠, 그래서, 다음엔 어디를 갈 건데."
미숙하게 감정을 숨기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려 하는 주피터의 물음에 덜스는 팜플렛을 펼쳐보았다. 여러가지 재미있는 어트랙션들이 그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먼저 눈에 띈건 가장 가까이에 있던 회전목마.
"아! 저건 어떻습니까! 귀여운 말들이……"
"말고, 저거."
주피터는 덜스의 의견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러고 나서 지목한 곳은 회전목마 바로 뒤에서 무시무시한 굉음과 비명소리가 섞여 공포를 자아내는 거대한 롤러코스터.
입을 닫지 못하고 그대로 팜플렛을 떨어트리는 덜스였다.
"에…… 또… 상공 60m에서 75도 각도로 자유낙하 급으로 떨어지는 세계 최고 공포지수 보유 우드코스터…?"
간단한 나들이 정도로 느낀 덜스의 얼굴은 빠른 속도로 굳어버렸다. 다리는 벌벌 떨기 시작하면서 주피터를 쓱 돌아보았다. 무심한 듯 보였지만 내심 기대에 가득 찬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걸 직접 두 눈으로 보자 공포심은 더더욱 커졌고,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공포에 질린 덜스가 주피터를 말리기 위해 지도를 접어 넣으며 돌아보았지만 이미 주피터는 무작정 입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자식이기도 했지만 일단은 보호자 입장인 덜스는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주피터를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이건… 저… 너무…."
"그럼 타지마. 나 혼자 탈 테니까."
"그건 그거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져버린 덜스. 말을 한다고 들을 주피터가아니였기에 그의 시름은 더욱 깊어져만 갔고, 점점 가까워지는 입구에 떨리는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지옥문에 들어가는 듯한 모습으로 주피터와 함께 입구로 들어갔고, 그 결과는 모두가 상상하는 바로 그런 결과. 덜스는 금방이라도 구토할듯한 표정으로 주피터를 힘겹게 따라가고 있었다.
"이런 시시한걸 무섭다고 타는 인간들…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네,"
무표정으로 시시한 척 하면서 입 꼬리가 실룩거렸다. 처음으로 느껴본 작은 스릴에 조금은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듯 신이 난듯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폴짝폴짝 뛰었다. 금방이라도 토를 할 듯한 덜스와는 그야말로 정 반대였다. 겨우 놀이기구 하나를 탔을 뿐인데 지쳐버린 덜스는 어지러운듯 좌우로 비척대면서 벤치에 걸터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했었다. 그러면서도 주피터에 대한 감시는 소홀히 할 수 없어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따라 덜스는 순탄치가 않았다. 놀이공원의 스피커에서 청아한 종소리가 들려오더니, 상냥한 안내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