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우쉽 글, 그림 페어합작
육아의 ‘육’ 자도 해보지 못한 주피터가 어린 덜스를 육아하는 일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덜스가 움직이지 못한 갓난아기 이었을 때는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잠은 제대로 못 잤었어도, 오히려 더 편했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왜냐하면 그나마도 갓난아이였을 때는 지구에서 얻어온 육아지침서대로만 하면 되었는데, 시간이 흘러 덜스가 걷기 시작하고 말을 하자, 지침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결과로 가니메데를 비롯한 위성들은 주피터의 과격한 애정(?) 덕분에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덜스의 큰 울음소리를 들어야 했다.
“우에에에엥-!!!!”
오늘도 역시였다. 주피터의 명령으로 태양계를 위협하는 존재들을 처리하고 온 가니메데는 목성이 떠나가라 들리는 덜스의 울음소리에 한숨을 쉬며 주피터와 덜스가 있는 대적점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방은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예상한대로 주피터는 울지 말라고 달래기는커녕, 한쪽 다리만을 잡아들어 올린 채 크게 우는 덜스에게 울지 말라며 버럭버럭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꼬까옷

나름대로 우는 덜스를 열심히 달래고 있던 주피터가 가니메데가 도착하자마자 질린다는 듯 덜스를 그에게로 넘겨버렸다. 가니메데는 서류철을 주피터의 책상에 두고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빨갛게 퉁퉁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탈진할 듯 계속 우는 덜스를 안아들어 달랬다.
가니메데가 품에 안아 조심조심 달래주자, 효과가 좋은지 덜스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런 덜스가 뭐가 또 못마땅한지 주피터가 투덜대며 가니메데가 건네준 서류를 확인했다.
“그래, 수고했느니라.”
한 마디만을 한 뒤, 책상위에 휙 서류를 던지듯 놓으며 주피터는 이제는 완전히 울음을 그친 채 가니메데의 얼굴에 길게 달려있는 무언가를 잡아당기며 노는 덜스의 머리를 덥석 잡아 들어올렸다. 덜스는 거친 주피터의 손길에 또다시 울먹울먹. 그리고-
“후에에에에엥!!!!!”
방금보다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그 상황에 가니메데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주피터의 나가라는 눈짓에 결제가 완료된 서류를 들고 주피터의 방을 나갔다. 그의 등 뒤로 덜스의 커다란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리고 뚝 그치라는 주피터의 고함도.
그의 방을 완전히 나가기 전에, 가니메데는 저러다가 덜스가 탈진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투덜대는 주피터에게 말했다.
“도대체 이 놈은 왜 나한테만 오면 우는 거야!”
“제가 안았던 것처럼 품에 안아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만..”
“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하며 찡그리는 주피터를 뒤로하고 가니메데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리고 잠시 후, 덜스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아마도, 주피터가 이제야 덜스를 달래는 법을 터득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달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 *
조용해진 목성, 한 숨 돌리고 있던 목성의 위성들에게 택배 하나가 배달되었다. 택배가 온 곳은 지구. 지구의 주인 어스가 주피터에게 보낸 것이었다. 가니메데는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살짝 택배를 뜯어보았다. 안에는 작은 옷가지가 있는 듯 했다. 아마도, 지구의 아기들이 입는 옷 같았다. 어스가 덜스의 선물을 보낸 듯 했다.
그 옷을 보고는 네 위성들은 심각하게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이걸 주피터 님께 갖다드려도 될까….”
“…태워버릴 것 같습니다….”
“…동감입니다….”
“….”
한참 수군대던 네 위성은 일단 갖다 줘 보기로 결정했다. 가니메데를 선두로 네 위성들이 주피터의 방에 몰려갔다. 대표로 가니메데가 방문을 노크했다. 그러자 방안에서 조용할 정도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가니메데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그대로 굳었다. 주피터는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분명 주피터의 어깨위로 뿅 하고 솟아난 초록색 떡잎은 덜스의 것이었다.
그 주피터가, 아기를 안아 달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떡잎이 조용히 움찔거리는 걸 보니 덜스는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엉거주춤 덜스를 안고 있는 영락없는 초보아빠 주피터의 모습에 웃음이 터지려는 가니메데였다. 하지만, 노려보는 주피터의 매서운 눈길에 웃음을 꾹 참은 가니메데가 조용히 말했다.
“지구에서의 택배입니다.”
“뭔데.”
“아기 옷 같습니다.”
“버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말하는 주피터였다. 가니메데는 알겠다는 듯,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택배상자를 들고 그대로 다시 주피터의 방에서 나왔다. 어떻게 되었냐는 나머지 세 위성들의 눈빛에 가니메데는 고개를 저었다. 약속이라도 하듯 택배를 들고 조용히 가니메데의 방으로 모인 총 네 명의 위성들은, 버리기 전에 어떤 옷인지나 보자며 택배를 조심스럽게 뜯었다.
택배 안에는 딱 봐도 고급스러운 재질로 만들어진 예쁜 남자아이의 옷이 있었다. 반팔 세일러복이었는데, 상의와 하의, 모자, 양말, 신발까지 세트로 구성된 옷이었다.

반팔상의는 셔츠 형식으로 입는 것이었는데, 기본적인 흰 셔츠에 덜스의 색깔과 맞게 뒤로 연결된 카라 부분과 접힌 소매의 부분이 연두색이었다. 그 위의 줄무늬는 진한초록색이었다. 카라를 뒤집으니 커다란 연두색 리본을 달 수 있게 안 쪽에 단추가 있었다.
반바지는 약간 펌킨 형식으로, 상의의 카라 색깔과 같은 연두색에, 허벅지의 반 정도 가리는 길이었다. 허리부분과 다리 밑단은 끈으로 딱 맞게 입을 수 있도록 제작되어 있었다. 허리부분은 약간 두꺼운 끈을 뒤로 돌려 리본을 묶는 형식이었고, 다리는 얇은 끈을 한 바퀴 반을 돌려 옆 부분에 리본을 묶는 형식이었다. 리본은 둘 다 카라 줄무늬와 같은 색깔이었다.
양말은 어린아이 무릎까지 오는 길이에 흰 바탕, 그리고 발 뒤꿈치와 발가락 부분에 검은색 부분이 있었다. 무릎 바로 아래쪽 부분에 얇은 검은색 줄이 두 줄 있었다.
구두는 일반 검은 구두로, 한쪽 발볼의 끝에서 다른 쪽 발볼의 끝까지 U자로 바지 색과 같은 연두색 줄이 두 줄 있었다.
모자는 삐딱한 챙이 없는 해군 세일러 모자와 비슷했으며, 주문제작 한 모양인지 커다란 연두색 리본이 옆 부분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정면으로 보았을 때 넓은 부분에 목성의 표시가 자수되어 있었다.
버리기에는 아까운 예쁜 옷이었다. 남자애 옷 치고는 리본이 많았지만.
“…….”
말없이 옷을 보던 네 위성은 알 수 없는 눈빛교환을 하고는, 옷을 잘 정리해서 깊숙한 곳에 숨겼다. 그리고는 태연한 얼굴로 각자 자신의 할 일을 하러 흩어졌다.
* * *
태양계의 행성들에게 후계자가 생겼다는 소식이 빠르게 우주로 퍼져나가자, 후계자를 구경하러 오는 다른 은하의 존재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후계자를 노리는 존재들도 있었다. 그 때문에 주피터를 비롯한 프로텍터즈는 본인들이 직접 자신들이 움직여 전투에 나갈 때에는 후계자를 부하들에게 단단히 단속시키고는 했다.
주피터도 그러했다. 위성이 네 명이나 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어 종종 어스에게 맡기곤 했지만, 이번에는 급하게 나간 모양이었다. 가니메데가 서류를 주피터의 책상에 놓으러 왔을 때, 덜스가 그의 서재에서 책을 꺼내 집무를 하는 의자에 앉아 한 글자씩 소리내어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낭랑하게 책을 읽는 덜스를 보다가, 가니메데는 얼마 전에 받은 택배가 생각이 났다.
주피터는 방금 나간 것 같으므로 적어도 빠른 시간 내에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고, 덜스는 자신을 따른다. 그러면 그가 할 선택은 한 가지였다.
“덜스 님, 방 어지럽히시면 주피터 님께 혼납니다. 제 방으로 가시겠습니까?”
가니메데의 친절한 말에 덜스는 갸웃거리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웅!! 덜쯔 호온...혼나능 거 시러!”
더듬거리며 말하는 덜스를 쓰다듬으며, 가니메데는 책을 제자리에 꽂고는 그를 안아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런 그의 표정은 무얼 결심했는지, 복잡미묘했다.
가니메데의 호출로 불려온 유로파와 이오, 칼리스토는 동글동글한 초록색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는 덜스를 둥글게 감싸는 형태로 섰다. 그리고 그 넷은 어리둥절해하는 덜스를 온갖 말로 달래며 문제의 옷으로 갈아입히기 시작했다.
상의가 셔츠 형식으로 되어 있고, 바지도 꽉 끼게 입는 것이 아니라 덜스는 칭얼거리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네 위성은 양말과 신발을 신기고, 모자까지 씌워주었다. 희한하게도 모자에는 덜스의 새싹을 배려하듯 구멍 하나가 뚫려 있어서, 하얀 모자위로 나와 있는 새싹을 더더욱 앙증맞게 보이게 했다.
부스스한 모습은 어디가고, 반짝반짝한 귀공자가 된 덜스를 보며 네 위성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덜스도 새 옷이 마음에 드는지, 연신 옷을 구경하다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네 위성을 향해 당차게 외쳤다.
“덜쯔, 예뻐여??!”
그런 그의 말에, 네 위성은 끄덕끄덕했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덜스는 방글방글 웃었다. 가니메데는 환하게 웃는 덜스를 보다가 뭔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덜스에게 무언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가니메데의 말에 나머지 세 위성도 거들었다.
“할 수 있습니까, 덜스 님?”
“웅!! 덜쯔, 잘 할 쑤 이써!!!”
당찬 덜스의 대답에 네 위성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 *
“…귀찮게시리.”
전투를 끝내고 투덜대며 들어온 주피터는 급하게 나가느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한 덜스를 찾으려, 빠르게 방안을 훑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방안은 아무런 기척 없이 조용했다. 주피터는 확 찌푸리며 황급히 방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저 앞에서 조그만한 형체가 그를 향해 도도도 달려왔다.
“다녀오셔써요!!”
인사를 하며 달려온 덜스를 보던 주피터는 안심하다가, 곧 당황했다. 덜스가 평소에 입고 있던 까만 망토와 부스스한 머리가 아닌, 윤기 나는 머리카락과 귀공자 같은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뭐냐?”
초롱초롱하게 쳐다보는 덜스에게 주피터가 퉁명스럽게 물어보았다. 덜스는 자랑하듯 한 바퀴 돌며 말했다.
“가니메데 님이랑, 이오 님이랑, 유로빠 님이랑, 칼리스또 님이랑 주셔써요!! 덜쯔 예쁘죠!!!”

마치 예쁘다고 칭찬해달라는 듯 쳐다보는 덜스의 눈빛을 무시하며, 일단 덜스의 안전을 확인한 주피터는 다시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덜스도 그를 따라 쫑쫑 방 안으로 들어왔다.
덜스도 찾았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좀 쉬려는 듯 주피터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그를 보던 덜스는 따라 앉을 생각인지 낑낑대며 높은 침대를 오르기 시작했다. 주피터는 어렵게 침대에 오르는 덜스에게 ‘그것도 못 올라오냐’ 라는 타박을 날리며 그의 몸을 번쩍 들어 침대에 앉혀 주었다. 원하는 대로 침대 위에 앉은 덜스는 주피터의 옆에 달라붙었다.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보는 주피터에게 덜스는 눈을 빛내며 얼굴을 내려달라는 듯 팔에 매달렸다. 주피터는 귀찮다는 얼굴로 투덜거리다가 덜스의 얼굴 높이에 맞추어 고개를 숙여 주었다. 덜스는 고개를 숙인 채, 왜 불렀냐며 입을 열려는 주피터의 양 뺨을 자그마한 손으로 잡고는 그대로 주피터가 당황하는 사이에 짧게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
“주삐또 님, 에, 사랑해여!!”
작은 입술의 감촉에 잠시 넋이 나가 있던 주피터는 덜스의 말에 확 찡그리며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린 줄은 알고 사용하는 거냐, 꼬맹이 놈이.”
“응!! 가니메데 님이 많이많이 조아하는 거라고 그래써요!!”
“…그래, 가니메데가 그렇게 가르쳐 줬더냐.”
누가 이런 옷을 입히고, 불순한 행동과 말을 하게 시켰는지 알 것 같다는 눈빛을 하며 주피터는 살기등등하게 덜스에게 재차 물었다. 덜스는 험악한 주피터의 분위기는 읽지 못하고, 주피터의 말에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덜쯔는, 음, 어스님도 조아하고, 음음, 가니메데 님도 조아하고, 다 조아해요!! 그 중에서 쭈삐또- 님이 제일 조아요!!! 그러니까 사랑해여!!”
“….”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손동작 까지 합쳐 열심히 설명하는데, 그 모습이 주피터의 눈에는 정말 귀여웠다. 하지만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슬며시 지어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무심한 표정으로 그러냐는 듯 살짝 고개를 까딱했다.
덜스는 주피터가 고개를 까딱하면서도 그의 눈길이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른 채, 주피터에게 재차 아까와 같은 질문을 했다. 대답을 꼭 듣고 싶은 모양이었다.
“덜쯔, 예쁘죠???!!”
결국 주피터는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방금보다 더더욱 눈을 초롱하게 빛내는 덜스의 말랑한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그래, 예쁘다. 꼬맹아.”

* * *
“어디서 그런 걸 가르치라고 그랬더냐.”
“…죄송합니다.”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인 네 위성을 보며 주피터는 다신 그런 걸 가르치지 말라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못한 그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리고, 어스가 선물해 준 덜스의 옷은 곱게 개어져 주피터의 방 한 켠 에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