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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승이 다가오고 있다.

  계승. 그들과의 이별. 내게 남은 시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몇 시간쯤 남았을까, 너무 적구나. 중얼거리며 눈을 살짝 감았다. 준비해야겠지, 라는 생각에 몸을 돌리는 순간, 익숙한 편지지가 눈에 띄었다. 붉은빛의 편지. 문득 그것과 비슷한 색의 그가 떠올랐다. 항상 날 보며 웃어주기만 했던 그다. 그 웃음이 전부 진실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만은, 나에게 솔직했으면 좋겠어. 마지막의, 이기적인 소망을 살며시 품었다.

 

  앞으로 몇 시간. 인가?

  검은색의 푹신한 의자에 몸을 맞긴 채로, 그녀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계산했다. 그 안에는…. 정리하려 하겠지. 뻔히 보이는 비너스의 동선에 그는 얼굴에 짧은, 하지만 분명히 씁쓸함이 서려 있었던 웃음을 잠깐 띄웠다. 똑똑, 조심스럽지만 분명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의 짧은 웃음은 금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의자에서 일어나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평소처럼 미소 짓고 있는 그녀였다.

 

  마르스. 그녀는 차분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응, 샛별아. 그도 차분히 답했다. …나, 곧 사라질 거야. 자신의 마지막을 담담히 내뱉은 그녀의 눈은 어느새 조금씩 젖어들고 있었다. 그런 비너스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는 입가의 웃음을 감춘 지 오래였다. 마르스. 다시 그를 불렀다. 그도 짧고 조용히 반응을 보였다. 네게 조금 이기적인 소원이 있는데, 들어주겠어? 고개를 살짝 들고 미소를 지었다. 그도 따라 웃으며 대답했다. 응, 말해봐. 마르스.

 

  " 나에게는 조금 더 솔직해도 돼. "

 

  그가 잠시 멈췄다. 고글 뒤에 숨겨진 눈은 당황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미안해. 괜한 부탁을 했네. 멋쩍게 웃음을 지어 보인 그녀는 수많은 감정이 섞인 눈으로 마르스, 그를 바라보았다.

 

  " ㅡ사랑해. "

 

  안에서 무언가가 덜컹, 내려앉았다. 그 말에는 사랑, 처절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절대 집착에까지 가지 않는, 절제된 열렬한 사랑.

  눈을 감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미안해. 그녀가 길고 길었던 이 여행길의 끝에서는 날 잊은 채로, 내가 그녀에게 줄곧 보여왔던 거짓 웃음, 거짓 고백. 그것들을 전부 잊은 채로 떠나기를 바랐다. 그런데 넌 난 잊기는커녕, 전부 기억할 작정인가보다.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른 채로 말했다.

 

  " 비너스. "

 

  그래, 라고 대답하듯이 그녀가 나에게 웃었다. 눈에는 눈물 몇 방울이 고여 있었다.

 

  " 나는 이제부터, 거짓말을 할 거야. "

 

  비너스, 여전히 반짝이는 그녀는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 미안해. "

 

  거짓으로 치장해버린 채, 목구멍 안쪽에서 내 진심을 조금씩 끄집어냈다.

 

  " 고마워. "

 

  그녀가 떨기 시작했다. 입꼬리는 내리지 않은 채로 조용히 듣고만 있는 그녀는 한층 더 위태로워 보였다. 눈을 감은 채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 사랑해, 비너스. "

 

  그녀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여러 의미가 함축된 짧은 세 문장을 그녀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서럽게 울고 있는 그녀를 품으로 끌어안았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무엇이 그리도 고마운지 계속 울며 중얼거리던 그녀는 마지막 웃음을 보이며 날 향해 외쳤다.

 

  " 안녕, 마르스. "

 

  눈물 자국이 선명한 그녀의 얼굴을 쓸어내리려 했지만, 빠르게 사라지는 그녀를 잡을 방도는 없었다. 이마에 느껴지는 감촉에 위를 올려다보자 웃으며 날 바라보는 그녀가 있었다. 잘 있어. 네 말이 끝맺음을 맺지 못하고, 흩어져내리는 네 몸과 함께 산산이 부서져 떨어졌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반짝이던 눈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본 자가 있었다.

  거짓말이라 하지 말걸. 진심이라고, 정말 진심이었다고 말해줄걸. 눈치 빠른 금성의 주인. 비너스는 분명 거짓이 아님을 눈치챘을 터지만 마지막까지 솔직하지 못했던 자신이 한심하고. 밉고. 화나고. 슬픈 마음에 얼굴을 감싼 채로 소리죽여 울었다. 그녀가 아직 이곳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화성의 작업실 한가운데에서 그는 고글을 벗은 채 조용히. 고요하게 그녀의 마지막을 마무리 지었다….

  알고 있어.

  그의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것, 알고 있었어.

거짓말을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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