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우쉽 글, 그림 페어합작
정확히 몇 광년인지 모를 드넓고 빨려 들어갈 듯한 우주를 떠돌다 보면 별의별 천체와 항성, 별들을 만나게 된다. 죽어가는 백색왜성들, 어린 별들, 그리고 죽은 별에서 태어나는 존재들인 블랙홀과 화이트홀. 우주를 안내하며 공간을 제어하고 별들을 제거해나가는 존재들. 마치 태초의 코스모스의 창조였던 어둠을 가르며 다시 동화되어 섬세한 유리 조각상처럼 빛나는 흰 피부를 지닌- 어깨까지 닿는 어둠 그 자체의 검은 머리와 꽤나 상반되었다- 그 남자가 식어가는 어린 별 앞에 서 있었다. 그 별은 꽤나 오래되어 보였지만 열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외관이었고 힘없는 붉고 흐리멍덩하다-빛나지만 흐렸다. 마치 곳 죽을 병자의 그것과도 같이. 은은하게 빛났으나 그 빛이 사라져가는 두 붉은 보석은 그를 뚜렷이 응시했다.
“…없애러 온 거야…?”
남자의 눈에서 빛나던 섬세하게 세공 된 자수정이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일렁이며 흔들린다. 마음이 약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짝이 말에 거머쥔 손에 힘이 들어가지만 이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이 자그마한 별은. 이 별은 자신의 죽음과 그 죽음의 책임자가 누군지도 알고 있는 자신과는 상반되게 흐리멍덩한 눈의 소유자인. 그가 느낀 것은 흥미였을까, 아니면 어디서 기어오르는 검은 추악한 두려움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본래의 천성으로 타고 태어난 호기심이었을까? 잠시간의 침묵 후에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본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말 한 마디였다.
“아니?”
“………?”
그럼 뭐 할 거야, 라고 조그만 입술이 살짝 움직였다. 그가 느낀 것은 분명 흥미였다. 마치 사나운 고양이가 쥐를 쫓을 때 쓰는 발톱 같이 검은 구체를 그 별에 살짝 비껴가게 쏘아 보았지만 아무 반응 없음. 별은 놀라지 않았는지 그저 가만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번엔 정말로 쏘아 보자. 그 별을 정확하게 겨눈 검은 구체를 손에서 생성하여 던지려는 순간 그 별이 자신의 손을 잡았다. 신기하다, 하고 빛 잃은 붉은 눈이 반짝였다. 별이 손을 꼬옥 거머쥐는 바람에- 약하다고는 결코 할 수 없는 힘이었다- 그 구체는 손가락 사이에서 사라졌다. 그 별이 손을 잡고 놓지 않으며 순진하고 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너 좋아.”
“……?!??!?”
“우리 친구 할래?”
이 무슨 소리인가. 자신을 없애러 온 존재에게 친구라니. 무슨 소리냐? 그 남자가 되물었다. 응, 친구 되자고. 없애러 온 거, 아니라며- 이 별을 없애는 것도 싫었지만 친구가 되는 것도 싫었다. 없애러 왔냐는 말 한 마디에 아니라고 대답한 자신의 방정맞은 입을 탓하며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 시리 b라고 해. “
이내 통성명까지 하는 그 별- 시리 b-. b 라고 불러달라며 그에게 말한다. 꺼져가는 불과 불타는 자수정이 공중에서 살짝 마주친다. 비틀린 미소가 순간 그 남자의 입에서 떠오르나 싶더니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B.H. 이름을 말한 붉은색 창백한 입에서 미소가 지워지더니 두 손이 그를 보며 신나게 종알대고 있는 b의 이마로 향한다.

네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보아야겠어. 그대로 없애기엔 참으로 아까운 순진함이었다. 그 기억을 보고 싶어. 갑자기 들어버린 잔혹한 충동이었고 그대로 두 손이 작은 별의 기억을 뒤지기 시작했다.
B의 기억은 모두 그에게는 하잘것없는 것들이었다. 그저 오빠 하나, 경영하는 바 하나. 오빠가 꽤 잘 해 줬나 보네. 그리고 그 별이 자신의 목숨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는 것을 기억들 속에서 찾았을 때- b에게 허락된 수명은 그의 기준으로는 애처로울 정도로 짧았다- 꽤 안쓰러웠고 그 외에 별다른 건 없었다. 이런, 재미없는걸. 굳이 능력까지 써가며 뒤질 만큼 가치가 있지도 않잖아. 아까운 능력만 낭비했다 생각하며 그가 바닥에 있는 별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짝에게서 온 전언을 들었고 그 자리를 떠났다. 미처 뒤처리는 생각하지 않은 채, 이대로 방치된다면 별의 기억은 거의 사라질 것이 분명했음에도.
* * *
하아, 그의 짝이 내버려둔 장소에 쓰러진 작은 별을 보고 진주를 누벼 짠 듯한 흰색의 머리카락과 구릿빛의 피부를 가진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또 뒷처리를 깜박했군요, B.H. 그가 지금부터 복구를 시작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마를 훔치며 그가 옆의 B.H에게 말했다.
“영원히 복구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어쩔 겁니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미안함이나 어쩌면 연민, 혹은 책임감이라도 느끼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