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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법 재미있는 일을 벌였네★"

 

  대형 모니터에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수치들과 영상을 지켜보고 있던 마르스는 기척 없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피식 웃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 빠른 눈치로 알아채고 온 것인지 모르지만, 이 일이 들통 난다면 그가 아닐까 하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제 어깨 위에 팔꿈치를 댄 채로 턱을 괴고는 모니터를 훑는 모습이 좋은 구경거리가 생겨서 즐거운 듯 보였다.

 

  "오, 부딪힌다★"

 

  자기방어적으로 짓고 있는 가식적인 미소가 흐려지고 자연스럽게 호선을 그리는 입술 끝을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제가 불러온 소행성이 지구의 대기권을 뚫고 생명의 원천인 푸른 바다와 충돌했다. 엄청난 섬광과 함께 지축이 흔들리고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땅이 하늘로 치솟는다. 바다에서나 볼 수 있던 해일이 대지 위에서 일어난 것. 생각보다 큰 충격에 지각과 소행성의 파편들이 대기권을 뚫고 우주까지 뻗어 나갔다.

 

  "이거 장관인데★"

 

  개조 해 준 머리카락 손이 볼을 쿡쿡 찌르는 것을 신경질적으로 쳐 내자 어깨에서 느껴지던 무게감이 사라졌다. 한걸음 정도의 거리로 물러나더니 제 주위를 두 바퀴 빙글빙글 돌며 무언가를 찾듯 살핀다. 그 시선에 불쾌함이 들어 인상을 쓰자 헤에-하는 감탄사까지 뱉어낸다.

 

  "뭐하냐"

  "오늘따라 감정 표현이 솔직해서 어딘가 잘못되었나 싶어 말이지★"

  "…."

 

  고리가 가볍게 움직이며 제 속을 꿰뚫어버릴 듯한 눈동자가 얼핏 나타났다 사라진다. 감정표현이라. 두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지금 내 표정은 어떠한가. 웃고 있는가? 아니면 울고 있는가? 그도 아니면…. 추악하게 일그러져 있을까.

 

  저를 감싸고 있던 가면들이 깨어져 그 틈새로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추스를 새 없이 새어 나간다. 동경하고 바라던 빛. 그 빛이 제 손이 아닌 아우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목표는 사라지고 쌓아올린 것들은 무너져 내렸다. 당연히 내 것이라 여겼던 것을 상실하는 순간 망가진 저를 숨기기 위해 벽을 둘렀다.

  겉모습만이라도 그럴싸하게 꾸며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우주를 품은 반짝이는 휘장이 아우의 어깨에 내려앉는 그 순간 똑같이 미소 지었지만, 의미가 달랐던 것을 알아챈 이가 있었을까.

『그의 것이기를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가정했을 뿐.』

  생명의 근원이라 불리는 물.

  순리대로 그 근원에서 생명이 태어난 지구.

  태양풍으로 인해 메마르거나 지면 아래로 스며들고 얼어붙어 근원이 사라진 화성.

  극명하게 나뉜 길 위에서 빛나고 있는 아우의 등만을 바라보며 부서진 저 자신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보이지 않는 피를 토해내다 결국에는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골디락스가 되기 위해 연구해 왔던 것은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한 기반이 됐고 상처를 숨기며 만들어낸 겉모습과 쌓아올린 신용은 시선을 돌리는 데 유용했다. 열어둔 시스템의 구멍에 따라 끌어들인 소행성은 아무런 제재 없이 태양계 깊숙이 들어와 지구와 충돌 중이다.

 

  시간이 흐르면 제 상처가 아물고 찢긴 감정 위로 먼지가 내려앉아 희미해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핏빛 고통만이 선연해질 뿐이었다.

 

  "네 열등감이 이 정도일 줄 몰랐는데★"

  "너만 하겠냐."

 

  옆에 다가왔을 때 곤두선 감각들 중 후각을 유혹하듯 스친 혈향을 기억한다. 저와 같으면서도 다른 가면은 쓴 그는 감정의 대상을 무너뜨리기보다 저 자신에게 낙인을 새기듯 끊임없이 생살을 파낸다.

 

  "그거 듣기 거북하네. 너랑 같은 취급 하지 말아줄래?★"

  "열등감 아니면 뭐냐."

  "동경이란 단어를 아니 꼬마야?★"

  "지랄"

 

  되지도 않는 소리라며 코웃음 칠 때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모니터 한쪽을 가득 메우던 글씨들 사이로 붉은색이 섞이기 시작한 것. 그 뜻은 계산의 오류. 철저하게 계획하고 예측해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 어긋날 것이라곤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새턴과 대화하는 사이 지구는 충돌의 여파로 지각이 뒤집혀 지고 지각해일이 몰아쳤다. 이로 인해 대량의 먼지와 검댕이 대기 중으로 치솟았고 암석층에서 유황이 분출되어 지구를 뒤덮기 시작했다.

 

  이게 아니야.

 

  바라던 결과와는 사뭇 다른 광경. 부딪히는 순간 산산이 부서지길 원한 것은 아니었다. 감시를 따돌리고 태양계 안쪽까지 이끌 수 있는 소행성의 크기는 단번에 지구를 파괴할 만큼 크지 못했고 그런 쉬운 끝을 줄 수는 없었다. 생명 탄생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그것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지금. 그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걸렸던 시간이 우스울 정도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보며 고통스러워 하다 서서히 죽어가도록 설계했었다. 계산이 어긋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런 어두침침한 대기가 아닌 붉디붉은 화염으로 뒤덮여있어야 했다.

 

  "얍★"

  "...써글, 무슨 짓이냐."

 

  눈앞에 벌어진 결과에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수치들을 머릿속으로 조합하며 실패의 원인을 더듬어 갈 때 갑작스레 시야가 어두워졌다. 분노로 인해 열이 올랐던 것인지 고글 틈으로 들어와 눈을 가린 손끝이 서늘했다. 거칠게 손을 잡아채 내리자 뒤를 이어 머리카락 손이 고글을 벗겨 내더니 눈을 가리며 머리를 휘감았다.

 

  "쉬-★"

 

  귓가에서 느껴지는 숨결과 함께 서늘한 손끝이 이마를 스치고 감겨있는 머리카락 위로 내려앉는다.

 

  "진정해★"

  "…."

  "답지 않게 흥분했네. 한계야 마르스?★"

  "…."

  "네가 이렇게까지 몰릴 줄 몰랐는데.★"

  "새턴."

  "왜?★"

  "내 미래는 어떻지?"

 

  가는 호흡이 멈추고 저의 열기가 옮겨가던 손에 힘이 들어가며 눈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느냐는 반응에 웃음이 나왔다. 저만 자신의 비밀을 알 것으로 생각했나. 그가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토성의 고리가 가진 힘은 진즉 연구해 왔고 워프뿐만이 아닌 시간 여행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말을 꺼낼 이유도 필요도 없어 침묵 했을 뿐. 과거 일정 시간 동안 사라졌다 나타나서 지독하게 지친 얼굴을 해 놓고선 저 자신의 일에는 한없이 둔한 놈답게 주변에서 은연중에 눈치채고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않았겠지.

 

  "말해봐. 내 미래는 어떤 모습이지?"

  "진심으로 묻는 거야?★"

  "물론."

  "내가 보는 미래는 일정치 않아. 늘 변하지. 같은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어. 그런데 넌 변함이 없었어. 늘 웃고 있지★"

  "…."

  "그 속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웃는다고…."

  "머리가 차가워지니 무서워 진 거야?★"

 

  정곡을 찔려서 말문이 막혔다. 분노로 들끓던 머리가 차단된 시야로 정보의 유입이 끊기자 서서히 가라앉아 제 모습을 깨닫게 했다. 질투와 열등감에 미쳐 버린 것 같았다. 일을 만들어 놓고 뒤를 대비해 두지 않았었다. 만약 이 일로 인해 어스가, 골디락스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행적을 지우지도 않고 움직여 조금만 조사한다면 제가 한 짓임이 드러날 것이고 어스가 사라진다 해도 골디락스의 자리가 자신에게 오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걱정하지마. 네 명은 생각보다 아주 질긴 것 같으니. 이대로 망가지진 않을 거야★"

  "… 욕하냐."

  "들켰네?★"

 

  손이 떨어져 나가고 키득거리는 웃음이 귀에서 멀어져 갔다. 눈을 감고 있는 머리카락은 여전히 풀리진 않았지만, 새턴이 자신의 앞으로 이동한 것은 느껴졌다.

 

  "부러웠어?★"

  "… 그래. 부러웠어. 아니 부러워. 그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한순간도 빠짐없이-."

  "솔직한 아이에겐 상을. 위로 해 줄까 마르스?★"


  볼을 감싸 쥐는 미지근한 체온에 이상하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소리 내어 울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위태롭기로는 자신보다 더한 놈이 저를 위로하겠다는 나서는 게 웃겼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바라는 유일한 한 가지를 영영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통점이 둘을 묶어 동질감으로 버티게 한다. 너보다는 내가 덜 힘들지. 하는 어쭙잖은 동정심 역시도.

  마르스는 새턴을 동정하고 비웃으며 위로받는다.

  새턴은 마르스를 동정하고 안도하며 위로받는다.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달콤함이 섞인 혈향이 코앞에서 맡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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