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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각각의 색을 뽐내며 빛을 내는 별들이 가득한 우주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아름다운 색채로 가득하던 시야로 빛 한 점 없는 암흑이 내려앉고 그 뒤를 이어 눈이 기억하던 빛들이 떠올라 희미하게 빛나다 형체가 일그러지듯 모양이 바뀌며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 낸다. 눈을 떠도, 감아도 우주가 보인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우주인가 망막에 남아 있는 그 흔적일 뿐인가.

 

  "또 공상 중이냐~"

 

  저만의 세상으로 빠져들어 가려던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목덜미를 잡아채 꺼내어 낸다. 천천히 눈을 뜨자 코가 닿을 듯 바짝 들이댄 얼굴로 인해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반응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속을 꿰뚫어 보겠다는 듯 흔들림 없이 마주한 시선. 그 시선이 가슴 한쪽의 둔중한 통증을 일으킬 때쯤 피식-하는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얼굴이 떨어져 나갔다. 솔라님의 그 말씀 이후로 가끔 이렇게 자신을 탐색하는 눈길로 훑는다. 혹시라도 있을 변수를 찾겠다는 듯.

 

  '부질없는 일인데...'

 

  같은 후보라 할지라도 그와 자신은 극과 극 아닌가. 아까 그가 한 말처럼 공상하며 저만의 세계에 빠지길 좋아하는 자신과 별의 가치가 아닌 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홀로 빛날 줄 아는 그. 누가 더 나은지는 두말할 것도 없으리라. 물론, 두어 번 자신이 만약 생명을 품게 된다면-이라는 전제하에 공상해 보긴 했다. 흥미로운 소재가 아닌가. 하지만 그뿐. 골디락스. 그 이름이 가지는 명예와 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자, 가자~ 솔라님의 부둥부둥 시간이야!"

 

  그것은 지금 저에게 손을 내민 이에게 가장 어울린다. 그에게 골디락스라는 이름까지 주어진다면 더욱 빛나겠지. 자신과도 닮았으면서 전혀 다른 그가 더욱 찬란하게 빛난다면 아주 기쁠 것이다. 골디락스가 된 자신의 형제. 마르스의 모습을 상상하며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 * *

 

 

 

  시간상 태양이 하늘 한가운데 떠서 그 은총을 베풀고 있을 시기였지만 지구 위에 내려앉은 것은 짙은 어둠이었다. 햇살이 대지 위를 비추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휘청이는 몸을 가까스로 지탱하며 몇 걸음 걷자 그으웅-하는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리자 큰 눈을 가득 저를 담아낸 채 큰 몸과 긴 목을 땅 위에 눕힌 채 쌕쌕거리는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평소와 같이 두 팔을 내 뻗자 아이는 다시 짧은 울음소리를 내기만 할 뿐 머리를 움직여 저에게 닿고자 하지 않았다.

 

  "갑자기 변한 환경에 놀랐구나. 어서 기운 내서 일어나야지"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하면서도 기어코 힘없는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움직여 아이에게 다가가 회복력을 일으켜 빛나는 손을 대었다. 한계 끝까지 끌어올린 능력으로 인해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빛이 났지만. 그 빛은 아이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점점 가늘어지는 숨소리와 큰 눈이 내려오기 시작하는 눈꺼풀에 가려지는 것을 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벌써 몇 번째 보고 있는 광경이란 말인가. 겨우 참아왔던 눈물이 결국 볼을 타고 흘러내리자 톡. 하고 이마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비…?"

  "산 성분을 띄고 있는 비다. 먼지 구름이 심상치 않더니 이렇게 변할 줄이야."

 

  한참 전부터 말없이 제 뒤를 따르던 그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것이 시작 신호라도 된 듯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은 쌓인 먼지와 화산재를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녹이고 옷감에까지 스며들어 녹이고 있었다. 긴 시간 동안 햇빛이 사라져 먹이 사슬의 최하층부터 무너져 결국 최상위에 있던 포식자들까지 대지 위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한데. 또 다른 기상의 변화라니. 나약한 자신 때문에 겪지 않아야 할 고통을 아이들이 겪고 있다.

 

  "돌아가자. 너 쉬어야 해."

  "아니야. 내가, 내가 아이들을 보호해 줘야 해."

  "헛소리. 너 멀쩡한 게 아니잖아. 지금 겨우 걷고 있는 거 모를 줄 알아?"

  "괜찮아. 우린, 난. 이 정도로 죽지는 않아. 잘 알잖아?"

  "어.스."

  "나 때문이야. 내가 막지 못해서 이렇게 된 거야. …내가 아니라 마르스였다면 막았겠지? 이 아이들이 아플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지?"

  "…방어라인을 지키지 못한 것은 우리야."

  상냥한 자신의 형제는 끝까지 저에게 잘못이 없다 위로해 왔지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모두 부족한 자신 탓이다. 지킴을 받고 있다고 너무 안일하게 지냈었다. 소행성 하나쯤은 자신이 막을 힘 정도는 키워뒀어야 했는데. 자괴감에 질식해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었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아이를 찾기 위해 발을 떼었다가 딛자 땅이 훅 꺼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몸이 기울었다. 곤두박질치는 몸에 이대로 외부적인 충격을 더 받는다면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조금의 대응도 할 힘이 나지 않아 멍하니 가까워지는 지면을 보고 있자,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덜컥거리며 몸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눈만을 굴려 저를 안다시피 잡은 마르스의 잔뜩 찌푸린 표정을 보다 잘게 떨리는 팔을 들어 올려 미간을 꾹. 눌러보았다.

 

  "이 상황에 장난이 나오냐."

  "마르스는. 웃는 게. 어울리는. 걸."

  "…너…."

  "미안. 정말…. 이제는. 한계. 일지도."

 

  가뜩이나 빛 한 점 없는 암흑에 날리고 있는 화산재와 먼지로 시야 확보가 힘들건만 비까지 내리고 눈물까지 고인 눈은 몸의 한계와 함께 제 기능을 상실해 버려, 한 마디 한 마디를 겨우 뱉어내고는 겨우 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아 버렸다. 아마도. 자신은 이 순간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유일하게 마음을 놓고 뒤를 맡길 수 있는 누군가가 와 주기를.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한계까지 움직이고 움직여 정신력으로도 버틸 수 없는 순간을. 도망칠 수 있는 순간을.

 

 

 

* * *

 

 

 

  머리를 쥐어박힌 플루토가 잔뜩 날을 세워 으르렁대다가 카론에게 끌려 명왕성으로 되돌아가 가는 것을 배웅하고 돌아서자 팔짱을 낀 채로 뚱하게 저를 보고 있는 마르스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음. 저기, 마르스?"

  "…."

  "아직 화 난 거야?"

  "…."

 

  미동도 하지 않고 표정의 변화도 없어 미안함에 절로 고개가 숙어졌다. 플루토와 장난치며 노는 것에 너무 심취해 그 정도가 심해져 희생양이 된 마르스가 얼마만큼 화를 낼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 가끔 같이 어울려 놀았기에 잠깐 화를 내더라도 금방 웃어넘길 것이라고 짐작한 것이 불찰이었다. 곁눈질로 힐끗 다시 살피자 플루토에게 화를 낼 때보다 더 가라앉은 표정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자신에게 실망한 것일까. 무거운 침묵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고 지레 놀래 목을 움츠렸다.

 

  "내가 왜 화가 난지 모르겠어?"

  "…응?"

  "하아, 피 냄새."

 

  재차 한숨을 내 쉬며 뱉은 말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반나절 전의 일인 데다 이리저리 돌아다닌 곳이 많아서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잔향이 아직도 남았단 말인가.

 

  "해명."

  "…."

  "어스."

  "…."

  "하긴 뭘 물어보랴. 지구에만 있는 네가 다칠 일이라곤 하나뿐일 텐데."

 

  플루토 그 자식. 하며 이를 갈던 마르스는 잔뜩 구긴 미간을 스스로 꾹꾹 눌러 피고는 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훑어보고는 정확히 플루토가 뜯어낸 왼쪽 어깻죽지에서 시선이 멈췄다. 상처는 이미 아문지 오래인데 어떻게 안 것일까. 마치 봤던 것처럼. 놀람을 넘어선 의아함이 아슬한 경계선의 지척에서 다다랐을 때 머리 위로 마르스의 손이 올라왔다. 쓱쓱 쓰다듬는 손길은 다정하지 않았지만, 걱정을 담고 있음이 느껴져 슬그머니 웃어 버렸다. 그래 자신과는 달리 능력 있고 감도 좋은 그이기에 알 수 있는 것이리라. 애초에 플루토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던 그들이기에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고 그 경계의 원인이 자신 때문인 것을 알기에 과민 반응이라 책잡을 수도 없다. 다 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웃고 있는 걸 알아챈 마르스가 뭘 잘했다고 웃냐며 쓰다듬던 손으로 머리를 꾹꾹 찍어 내려 항복을 외치며 소리 내 웃어버렸다.

* * *

 

 

 

  "야, 너희 아이들은 포기란 걸 모르냐?"

 

  공간을 넘어서 오랜만에 찾아온 마르스는 대뜸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으며 귀찮아 죽겠다는 듯 푸념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39번째 화성 탐사선인 오퍼튜니티 로버가 화성 궤도 내로 진입했다고 했다던가. 수십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보내오는 탐사선에 질려 버렸나 보다.

 

  [ '거대한 은하 구울'이 무섭지 않나 봐. :D]

 

  자신들에게야 행성 간의 거리쯤은 포탈로 아주 쉽게 이동하지만 인간들에게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더군다나 긴 시간을 거쳐 우주를 여행하고 목적지에 착륙하는 과정을 버티고 그들의 눈과 귀, 손을 대신할 탐사선을 만들려면 그들의 화폐로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갔고 첨단 기술력이 동원되기에 가깝게만 느껴지는 화성 탐사선의 여러 실패는 탐사를 방해하는 모종의 무언가가 있다는 괴담까지 돌게 하였다.

 

  '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

 

  실제로 마르스가 파괴한 것들도 제법 되긴 했다. 장난삼아 건드렸다가 너무 약해서 부서진 게 두어 개, 화성에 착륙했던 게 기특해서 따라다니다가 실수로 밟아서 망가진 게 하나. 거치적거리고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망가뜨린 게 또 여럿. 그 외에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들로선 원인 모를 실패가 잦았다.

 

  "돌덩이랑 모래바람만 휘날리는 행상 볼 게 뭐 있다고 줄기차게 보내는 것인지."

  [본능적으로 '골디락스 후보' 였음을 느끼고 제2의 지구를 찾는 게 아닐까.]

  "그거 농담이냐?"

  [농담같아?]

  "…."

 

  방독면에 가려진 제 표정을 알아내겠다는 듯 뚫어져라. 바라보는 마르스의 시선에 저 역시 까만 고글 너머의 눈동자를 상상하며, 같이 묵묵히 바라봐 주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서로 간의 표정과 눈을 숨기기 시작한 것이. 숨쉬기 힘들다는 이유로 쓰기 시작한 방독면은 어느새 자신을 가리는 방패막이 되었고 B.H의 능력 습득으로 윤회안으로 바뀐 눈을 가리기 시작한 마르스의 고글도 눈만을 가리는 것이 아닌 그의 가면을 한층 더 두껍게 만들었다.

 

  [농담이야 :)]

  "…재미없다."

  [그래?]

 

  의식할 새도 없이 멀어진 서로의 거리감은 웃고 대화하고 있는 순간에도 부지불식간에 찾아와 어색함을 안겨주고 더욱더 거리를 벌렸다.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님에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이 현상은 도대체 무얼까. 자신은 아직도 마르스를 믿고 의지하고 있지만 무언가가 그를 밀어내고 있었다. 대체 왜?

 

  "아아아아, 모르겠다. 그냥 놔두련다. 저러다가 또 고장 나겠지. 인간들의 기술로는 아직 멀었어. 이 몸의 행성을 연구하겠다니."

 

  슬쩍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피한 마르스가 재차 머리를 헤집고는 포탈을 열었다. 다음에 보자- 하고 떠나는 그 등을 잡기 위해 들어 올렸던 손은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서 주춤했고 포탈이 닫히고 난 뒤에야 의지대로 움직였다. 왜 이럴까.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다 마르스가 사라진 방향으로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듯 잡아보았다.

 

  난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 걸까.

 

  무엇이 두려운 걸까.

 

 

 

* * *

 

 

 

  푸른 노을을 바라보던 마르스는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를 손바닥으로 받아냈다. 체온에 녹은 눈은 지구의 눈과 달리 흔적 없이 승화하여 사라졌다. 비어버린 손바닥을 내려다보다 피식 웃고는 포탈을 열었다. 공간을 넘어 연구실보다 더 깊숙이 화성의 내핵 가까이 숨겨진 방에 들어선 마르스는 한 곳만을 비추고 있는 대형 스크린을 확인하고 방 한가운데 있는 구조물에 다가가 눈을 받아냈던 손으로 표면을 쓸었다. 원하는 바는 모두 이루었다. 오랜 갈망의 끝. 드디어 손에 들어왔다. 등 뒤의 스크린에는 화염에 휩싸인 지구가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데이터 속에서 붉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 내 앞에 선 그의 등은 언제나 든든했다.

  막 피어난 듯 생생한 꽃들이 한가득 채워진 유리관 속에서 그의 동생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현실을 외면한 채 과거의 시간을 되풀이하며.

  "꿈을 꾸니 동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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