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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달괭 - 플루토

D. 병아리 - 아프로디테

  "우리 친하게 지내봐요- 남은 사람들끼리."

 

  곱게 호선을 그리며 지어지는 미소를 보던 플루토가 인상을 슬쩍 찌푸렸다. 남은 사람들? 묘하게 혀끝에서 걸리는 말에 그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대답을 내놓았다. 닥쳐. 그 한마디에 디테는 장난기 가득한 몸짓으로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우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리곤 웃음기가 잔뜩 묻어나는 음성으로 짤막히 외쳤다. 너무하네! 디테 슬퍼!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심드렁한 그는 볼일도 끝났으니 그대로 디테를 지나쳐 가려고 했다. 디테의 손이 저의 얼굴을 향해 뻗어오지만 않았다면. 갑작스레 다가온 손을 미쳐 피하지 못한 채 가만히 있으니, 곧 금빛의 손이 그의 뺨을 조심스레 감싸고 살살 쓰다듬기 시작했다. 어쩐지 간지러운 느낌에 고갤 슥- 돌렸으나, 그대로 쫓아오는 손에 피하는 것을 포기하는 사이 디테의 입술이 다시 한 번 열렸다.

 

  "게다가 당신을 이해해 줄 사람은 이제 나밖에 없으니까-"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은 플루토가 고갤 약간 돌린 그 자세 그대로 눈동자만 굴려 디테의 얼굴을 봤다. 조금 전보다 더 진하게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은 보이나, 얼굴은 베일에 거의 다 가려져 있어 그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시선을 원래대로 돌리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이 오늘따라 왜 이래- 그런 생각을 하는 플루토의 속을 눈치챈 것인지 디테의 입에서 억울함이 담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 좀!! 진지한데!! 그 외침에 가볍게 콧방귀를 뀐 그는 뺨에 닿아있는 금빛 손을 밀어내고, 이번에야말로 디테를 지나쳐 원래 목적이었던 지구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보던 디테의 입꼬리가 서서히 비틀리기 시작했다. 당신이 지구로 가버리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플루토- 곧 죽을, 한계가 온 어스를 떠올리며 플루토의 뺨을 어루만지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손이라- 그때 잡아준 손도 이 손이었는데. 계승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를 떠올린 디테의 얼굴이 다소 부드럽게 풀어졌다.

 

 

 

* * *

 

 

 

 계승된 직후 프라이였던 그는 아프로디테가 되었으나, 비너스에 대한 모든 것을 붙잡고 놓지 못해 금성에 가는 것을 거부했다. 바뀐 그 모습으로 지구의 여기저기로 도망치 듯, 가능할 리가 없는 숨바꼭질을 하던 디테가 플루토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아니, 밥 먹듯이 지구에 오는 플루토이기에 마주치게 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었으나, 그 순간에는 그런 생각도 못하고 속으로 꽤나 놀라 그대로 굳어버렸더란다. 주저앉아있던 그대로 바라보는 사이, 플루토는 그의 발치에 굴러다니는 베일을 주워 디테에게 다가갔다. 말없이 베일을 건네는 손을 잠시 물끄러미 쳐다만 보던 그는 이내 고개를 다시 들어 플루토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무슨 생각이지? 의중을 읽어보려 가만히 있자, 인내심이 짧은 플루토가 먼저 움직였다. 몸을 낮추더니 디테의 한 쪽 손을 덥석 잡아 자리에서 일으켜 세운 뒤, 그 손에 그대로 베일을 쥐여주었다.

 

  “네 별로 돌아가.”
  “…… 요일에게 별이 어디 있어요? 이상한 소릴 하시네, 플루코팜정님?”
  “플루토님이다!! 어스가 너 때문에 내내 걱정하고 있잖아! 냉큼 돌아가!”

 

  어스. 플루토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어이가 없다는 듯 손에서 시선을 옮겨 플루토를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플루토의 표정은 처음부터 전혀 변화가 없었다. 아, 원래 이런 사람, 아니 별이었지. 어쩐지 울컥한 그는 몸을 한 쪽 방향으로 틀며 쫓아내 듯 손을 까닥거렸다. 가요, 가- 가서 걱정할 필요 없다고 전해주고. 그걸로 됐죠?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 분명한 그 태도에 인상을 팍 찡그린 플루토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좀 전과는 다른 음성으로 툭 한마디 던졌다.

 

  “살아있으면 언젠가 죽어.”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에 플루토를 향해 다시금 몸을 돌린 디테는 그대로 차오른 감정을 쏟아 내려고 했다. 그 순간 마주한 그의 눈이 아니었으면. 수많은 감정이 담긴 눈에 그대로 멈춰버린 그에게 플루토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기억하지 말라고 안 했고 추억하지 말라고도 안 했어. 근데 금성, 너한테 믿고 맡겼지?”

 

  답지 않게 차분하게 이어지는 말에 디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믿고 맡긴 별. 나의 어머니의 별.

 

  “그 믿음에 배신하진 마.”

 

 

 

* * *

 

 

 

 믿음에 배신하지 마. 그렇게 말해준 뒤 곧장 사라졌던 플루토를 떠올리던 그는 시선을 고정하던 손을 들어 제 베일을 만지작거렸다. 그 이후로 디테는 자연스럽게 허전한 곳에 플루토를 채우기 시작했다. 세럴을 쫓아다녔던 게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플루토로 가득 채워진 마음을 디테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저를 일으켜 세웠고 버틸 수 있도록 해줬으니 오히려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플루토만을 채우고 쫓기 시작하자, 그날 저를 멈추게 했던 그 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이미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거겠지. 우리들이 차례차례 계승될 거란 것도, 어스님이 곧 무너질 것도. 그러니까-

 

  “전 그 순간만을 기다려요, 플루토-”

 

  즐거운 듯 경쾌한 음성이 조용한 디테의 공간에 울려 퍼졌다. 만지작거리던 베일을 벗자, 그 소리와 말만큼이나 밝은 표정이 드러났다. 자신의 얼굴에 진하게 그려진 호선을 놓여있던 거울을 통해 보던 디테는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하고 어스가 무너질 날을 헤아려보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의 어버이로서 정말로 좋아하는 별이고 별의 주인이었으나, 지금은 그보다 더 플루토를 원하고 또 원하는 만큼 하루라도 더 빨리 무너지길 바랐다. 그가 무너지면 당신을 이해할 사람은 나뿐이에요,

 

  “플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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