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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한 점 새지 않는 어두운 공간 안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조용히 웅크려 앉아 있었다. 마치 커튼으로 암막을 쳐 놓은 듯한 어둠이 그녀의 주변으로 깊게 내려앉았다. 오랜만의 적막이었다. 상대할 적도,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위성들도 없는 조용한 화성에서 아레스는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고 조용히 숨을 몰아쉬었다.

W. 털실 - 아레스

D. 오르카나토 레이 - 새턴

  휴식을 바랬다. 저가 오래 전부터 계속 생각해 오던 것이었다. 하루만이라도, 조용히 보내고 싶다. 태양계를 지키며 그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마다 드는 생각에, 아레스는 가슴 한 편이 먹먹해지곤 했다. 쉬면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작게 중얼거리며 아레스는 무릎을 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그의 생각이 더욱 절실히 났다.

 

 

  "새턴 님."

 

 

  그 이름을 조심스럽게 부르자마자 일순간 아레스의 눈에 투명한 액체가 고였다. 한동안 아슬아슬하게 눈꼬리에 매달려 있나 싶더니 이내 허무하게 볼을 따라 주르륵 흘러 버린다. 그 눈물의 방향을 따라 아레스의 고개도 숙여졌다. 아플 정도로 제 주먹을 강하게 바닥에 내려치면서 입술을 깨물어 가며 울음을 억지로 참아본다. 허나 뜻대로 될 리가 없지, 결국 음성은 터져 나와 눈물과 함께 겉잡을 수 없는 감정이 폭발해버리고 만다. 계승을 하기 전에, 어린아이일 적에도 잘 보이지 않았던 무너진 모습을 보여 가며 제 얼굴을 가린다. 눈가를 계속해서 비벼 가면서 애써 울음을 멈춰 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 포기하고는 움켜 쥔 주먹으로 제 가슴을 두드린다.

 

 

  난 어떻게 해야, 새턴 님.

 

 

  생각과는 다르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다시금 제 가슴을 두드렸다. 그 이름을 멋대로 부르는 것도 힘들어요, 이제는. 눈물로 흉히 얼룩진 얼굴을 하고 아레스는 작게 중얼거렸다. 당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 줄 알았더라면, 미리 마음을 접어두는 것이었는데. 아려오는 마음에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는 작게 신음을 흘린다.

 

 

강한 행성이 되겠노라고, 당신에게 약속했는데.

 

 

  아직 저는 많이 어리고 미숙해요. 그래서 당신 없이는 버틸 수가 없어요, 새턴 님. 머릿속에 잔상이 강하게 남아 도무지 잊을 수가 없는 그의 모습을 되새기고 되새기며 아레스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바보 같이, 사람 하나 잊지 못해서. 그것은 사랑에 있어 무력한 자신에 대한 원망과, 스스로에게 가하는 채찍질. 어서 잊어 버려, 새턴 님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아.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고, 지구로 내려와 도넛을 사 가고 익숙하게 자신에게 장난질을 치는 새턴은 더 이상 없다.

 

 

  그래도 얼굴 한 번쯤 보여줄 수 있잖아요.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면서. 우리를 멀리서 지켜보다가 정 아니겠다 싶을 때 돌아와 괴롭혀 줄 테니까 각오하고 있으라면서. 그게 벌써 한참이나 지났는데.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좌우로 휘젓는다. 진정하자, 아레스. 남이 보면 얼마나 비웃겠어. 사랑 따위에 휘둘리는 모습이라니. 조소를 지으며 스스로를 비웃는다.

 

 

  마지막 헤어질 때 당신은.

 

 

  세럴에게 했던 말들, 그건 모두 온전히 제 것이라고. 후에 아레스는 생각했다. 마르스가 제 곁을 떠났을 때는 무덤덤했던 감정이 되려 새턴이 사라질 때에서야 폭발하고 말았다. 세럴에게 마지막 말을 건네는 모습까지는 꽤나 덤덤히 지켜보았지만 점점 사라져가는 새턴의 모습을 보니 서러운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도 못 했는데. 그와 제대로 대화 나눠 본 적도 없는데. 어쩌다가 그를 사랑하게 되어 버려서. 멍청하게도- 오른쪽 눈을 덮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아레스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세럴에게 미안하다고, 보고 싶다고 말하지 말고 제게 말하시지 그러셨어요. 말도 안 되는 원망을 하면서.

 

 

  당신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어요.

  꽃과 같은, 생명체가 살아나기 어려운 우주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의 꽃과 같이. 그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당신만을 바라볼 수 있게.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당신에게서 관심을 받고 그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게 말이에요. 매 순간 순간마다 떠오르는 새턴의 얼굴에 아레스는 도저히 절제할 수가 없었다. 많이 사랑했는데. 답변 따위 돌아오지 않을 혼잣말을 뱉으면서 아레스는 다시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잊을 수 있을까요.

 

 

  내가 당신을 잊게 될 수 있을까요. 그토록 많은 기간 동안, 그토록 외롭게 혼자서 사랑해 왔는데. 뒤늦게서야 깨달은 감정을 아릿하게나마 잡고 있는데. 이 모든 감정을 잊고 당신을 놓을 수 있을까요. 더 이상 돌아오지 않게 될 것이라 확신했던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고개를 푹 숙이던 다른 행성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억지로 입술을 깨물어 가며 참았던 눈물들과, 홀로 외로운 화성에 남아 당신과의 짧았지만 강렬했던 추억들을 되새김질하고, 토성의 위성들에게 찾아가 새턴은 어떠했느냐고, 나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었느냐고 지나칠 정도로 캐 묻던 부끄럽던 나의 모습까지 모두. 잊어 버릴 수 있을까요. 보낼 수 있을까요.

 

 

  멍하니 허공에 시선을 둔다. 까져 피가 배어나오는 손가락을 움직여 바닥에 조용히 새턴의 이름을 새겨 본다. 그리고 이내 벅벅 문질러 지운다. 제 가슴 속에서도 이렇게 당신의 기억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머릿 속 담긴 새턴에 대한 기억들과 잔상들을 잊기 위해서. 잊을 수 있어, 잊을 수 있을 거야, … 혼잣말이 허공에 메아리치듯 퍼지다가 이내 다시 되돌아와 아레스의 가슴에 비수를 꽂듯이 다가와 꽂혔다. 잊을 수 있어? 정말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넨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지.

 

 

  하, 작게 탄식을 뱉으며 아레스는 제 두 손으로 얼굴을 묻었다. 그럴 리가 없지, 멍청하게도. 무슨 희망을 가지고. 손 틈 사이로 아레스는 기이한 신음 소리를 뱉었다. 그런 거 잘 알고 있으니까, 그만. 제발 그만. 무의식 속에서 저를 비웃는 듯한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네가 그렇지 뭐, 병신. 아레스를 욕하는 그 말의 주인은 이내 아레스 자신의 목소리로 바뀌며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렇겠지, 못 잊겠지. 아레스는 작게 중얼거리며 얼굴을 가렸던 손을 조심스럽게 내렸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하고 굳게 입을 다문다. 아레스의 주위로 다시금 적막함이 감돌았다. 화성의 주위로 어두운 하늘이 비춰졌다. 빛 한 점 나지 않는 바닥에 앉아 아레스는 작게 숨을 뱉었다. 마치 커튼으로 암막을 쳐 놓은 듯한 어둠이 그녀의 주변으로 깊게 내려앉았다. 어둠과도 같은 짙은 적막함 사이에서, 아레스는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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