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우쉽 글, 그림 페어합작
W. 리시아 - 어스
D. 김배추도사 - 오르쿠스




[그래, 그 대신 후회하지 말라고 골디락스…]
아무래도 직접 대면하고 말을 건넬 기회는 드문 둘의 조합이었기에 기회다, 싶어 필사적으로 그를 붙잡은 어스였지만 그가 자신의 말을 쉬이 들어줄줄은 몰랐기에 조금 놀란 기색을 한 그는 나지막히 말하고 자리를 뜨는 오르쿠스에 설렘 반, 긴장 반의 마음을 갈무리해 그 자신도 따라 자리를 옮겼다.
…왠지 자신이 사고를 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긴 했지만.
* * *
"…여긴, 카이퍼대?"
짤막한 대답도 없이 앞서 휘적휘적 가버리는 그에 조금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주위를 살펴보던 어스는 직접적인 위협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조금 서둘러 둘 간의 간격을 좁혔다. 죽음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었는데, 왠 카이퍼대? 의아한 눈빛으로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통수를 바라보자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 대답해오는 그의 목소리에 어스는 조금 놀라며 플루토의 망토를 더 꾸욱 쥐었다. 왠지 조금 추운 느낌이 들어.
"죽음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었지."
"아, 응. 그랬지."
"죽음이란 것은 그리 쉽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생명이 죽는 것을 질리도록 봐왔을 골디락스가 모른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겠지."
하나하나 맞는 말만 하는 오르쿠스에 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자신이 그동안 품어왔던 의견을 소리내었다. 왜일까, 그에게는 더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 3자에게 고민을 털어놓기 더 쉬운 까닭과 같은걸까. ..모르겠어, 죽음이란 건. 매일, 아니 어쩌면 눈을 감고 뜨는 매 순간마다 목격하는 것이 죽음일 터인데. 나에게 드는 것은 안타깝고 가여운 감정 뿐. 그렇지만.
"…그렇지만, 내가 알고싶은 죽음은 그런 감정들이 다가 아냐. 난, 「죽음」 그 자체를. 좀 더 알고싶어."
부드럽지만 강단있는 목소리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고요한 공간을 울렸고 이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돈 오르쿠스의 입가에는 그의 이를 조금 드러내보이는, 미소인지 비소인지 모를 것이 떠있었다.
"좋아, 그정도 마음가짐이면 괜찮겠군."
떨어져도 책임 안 진다. 알아서 꽉 잡아라. 오르쿠스는 그리 낮게 말하곤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고 있던 어스를 순식간에 들어올려 땅을 강하게 박차고 빠르게 날갯짓하기 시작했다. 놀란 어스가 놓칠 뻔한 플루토의 망토를 끌어안고 지금 뭐하는 거냐며 불만을 표한 것도 잠시, 그의 발 아래로 보이는 것들에 어스는 잠시 말을 잃었다.
"보이나? 골디락스."
자신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기척을 숨긴 여러 소행성들이 흉흉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단단한 바위도 꿰뚫어버릴 것 같은 저 살기를 대체 어떻게 숨긴 것인지. 조금 두려운 마음이 슬몃 고개를 드는 것에 어스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냐, 두려워 하지마. 그리고 그와 공명하듯 오르쿠스의 입에서 나온 말에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굳게 먹은 그였다.
"두려워 하지마. 이럴거면 버리고 갈 거다."
두렵지 않아. 난 무섭지 않아. 여전히 품에 꼭 끌어안은 플루토의 망토에 그가 곁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런 그를 흘긋 내려다본 오르쿠스는 별 말 없이 날개를 몇 번 더 펄럭여 그의 목적지에 다달아 들려있는 어스에게 배려 하나 없이 무심하게 착지했다. 아얏, 하고 바닥에 살짝쿵 넘어져 아릿하게 울리는 허리를 문지르며 어스는 그들의 도착지를 흥미로운 눈으로 관찰했다. 아까 자신들이 있던 곳보다 조금 넓고 장애물도 별로 없는 공터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강하게 느껴지는 폭풍전야같은 고요함. 관찰을 대간 끝낸 어스는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오르쿠스에게 입을 열어 의문을 표했다.
"여긴, 어디야?"
"내가 너에게 죽음을 보여줄 곳이다."
그의 대답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살풋 인상을 쓰는 어스에게 조금 귀찮다는 듯이 짤막하게 설명을 이어주는 오르쿠스였다. 이 곳은 묘하게도 이성을 잃은 소행성들이 자주 오더군. 일종의 쓰레기 처리장이지. 담담히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어스는 서서히 짐작이 가기 시작하는 그의 계획의 진위여부를 물었다.
"…그래서, 나에게 보여주려고?"
별 말 없이 갑작스레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그에 따라 시선을 옮긴 어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성을 잃은 채 사방으로 흉흉한 살기를 내뿜으며 희생자만을 찾아다니는 살육에 굶주린 소행성의 모습이었다. 가여워. 어쩌면 자신이 희생자가 될 수 있는 그 상황에서도 동정심을 느끼며 어스는 흘긋 오르쿠스를 한 번 바라보았다. 큰 동요 없이 그는 어스에게 한 마디를 툭 던지곤 공터의 가운데로 몸을 옮겼다.
"그 녀석 망토로, 잘 감싸고 있는게 좋을거다."
어렴풋이 짐작가는 이유에 플루토의 망토를 더 단단히 담요처럼 두르며 어스는 오르쿠스가 그 소행성에게 다가가는 광경을 호기심에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무리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였다지만 궁금한 건 해소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아. 아무것도 모르고 덤비려드는 소행성을 같잖게 바라보며 오르쿠스는 점차 골디락스의 앞에서 제어하던 사기(死氣)의 고삐를 슬슬 풀어놓기 시작했다. 서서히 엄습하는 공포에 잠시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던 소행성은 이내 난폭함이 공포를 억눌렀는지 크게 울부짖으며 오르쿠스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시들었…어…?"
큰 손아귀에 머리가 잡힌 채 몸부림치는 소행성의 기력을 모조리 흡수하며 비명을 지르며 시들어가는, 그래, 시들어간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현상을 무덤덤하게 내려다보는 오르쿠스의 모습에 이상하게도 어스는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저 소행성이 가여웠다, 그를 동정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감정의 소용돌이에 어스는 그저 빤히 더 몰려오는 소행성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름다워. 생명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 새로이 피어나 활기 넘치는 아름다움이 아닌, 빨려 들어가버릴 것만 같은 퇴폐적인 아름다움.
저도 모르는새 말라가는 입술을 느릿하게 축이며 어스는 오르쿠스가 그의 사기를 완전히 풀어놓는 것을 바라보았다. 플루토에게서도 느껴지던 그 흐름이 몇 배는 더 증폭된 느낌이었다. 그의 뒷보습은 가히 플루토 못지않게 '명왕'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라고 감히 생각하며 어스는 그의 움직임을 눈으로 계속해서 쫓았다. 묘하게 중독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흔히들 반대의 것에 유난히 끌린다고들 하던가. 싱그러운 생기로 가득차 있는 골디락스에게 위험한 아슬아슬함으로 가득 차 있는 죽음의 존재는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본능적인 경계심에 한껏 날이 선 감각에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은 그가 상상하던 그 이상의 것이었다. 무심코 손을 뻗고 싶어지는 감각에 휩싸여 어스는 그저 오르쿠스가 나머지 소행성들 역시 처리하는 것을 멍하니 지켜볼 뿐이었다.
* * *
"…오늘, 고마웠어. 오르쿠스."
조금 정신없는 와중에도 감사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않은 어스가 그를 향해 미약하게 미소를 지어보냈다. 너무도 자극적이라 왠지 머리가 어찔한 기분이야. 아마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었더라면 죽었을지도. 그는 친절하게도 그를 다시 지구에 데려다 준 오르쿠스를 무엇인지 모를 마음의 이끌림에 따라 조금 충동적으로 붙잡았다. 골디락스가 이러는건, 이상할지 몰라도. 자신을 의문인지 뭔지 모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기분에 빙긋 미소를 지어보이며 어스는 한마디 마지막 말을 건네고 그를 놓아주곤 손을 흔들어보였다.
잘 가, 또 다른 명왕.
"…괜찮다면, 다음에도 또 구경하게 해줘."
다음에 만날 때까지, 일단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