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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싹 마른 찻잎을 작은 수저로 소복하게 몇 숟가락을 푹 퍼서 뜨거운 물에 우린다는 것은, 결코 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시리우스가 그 행동을 할 때마다 손님들의 이목을 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음이 느긋해지는 향긋한 차에 전통 소주를 넣고 가볍게 저으면,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신메뉴가 완성되어 손님들에게로 내어갔다. 홀짝거리며 한 모금을 마신 손님들은 모두 칭찬을 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칭찬을 받은 시리우스는 얼굴을 불그레하게 밝히고는, 찻잎이 좋아 그런 것이라며 작게 손사래를 치며 웃을 뿐이었다,

 

  '… 아.'

 

  운영 시간이 다 되어, 남은 물품들을 정리하던 시리우스는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찾는 사람이 많아 충분한 양을 준비해 놓아야 하는 찻잎이 말라 바스러진 가루가 되어 유리병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내일이 휴관일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시리우스는 마지막으로 진열대를 한 번 쓱 쓸어내고는 바의 문을 잠갔다.

 

 

 

* * *

 

 

 

  따스한 햇볕이 기분 좋은 시간. 시리우스는 찻잎을 가지러 가기 위해 미리 덜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혹시 오늘 시간 괜찮다면]

 

  새까만 일자 막대가 글자 옆에서 깜박이고 있었다. 쉼 없이 손을 놀리던 시리우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지금까지 적던 내용을 전부 지워버렸다. 다시 한 번 타닥거리며 한 문장을 완성하고는 채 몇 초도 되지 않아 원래의 화면으로 돌려놓았다.

 

  후우.

  단순한 연락 한 번일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긴장되는지. 시간이 지나도 긴장이 쉬이 사그라지지 않아, 두어 번 심호흡하고는 몇 번이나 쓴 다르지만 비슷한 문장을 단번에 쓰고는 그대로 덜스에게 전송했다.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귀여운 이모티콘이 덧붙여진 답문이 시리우스에게 보내졌다.

 

  [저야 언제든 괜찮습니다! 장소는 전에 오셨던 제 정원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๑´∀`๑) ]

 

  여러 문자가 혼합된 듯한, 꼭 덜스 그같은 이모티콘을 보고 시리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살풋 웃었다. 입가에 가득 웃음을 머금고는, 시리우스는 무척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덜스에게 향했다.

 

  덜스의 정원은 언제가도 기분이 좋았다. 그의 정원의 향기는 상큼한 내음이 가득하기도 했고, 달큼한 내음이 정원을 꽉 메우고 있기도 했다. 다만 어느 향기든 전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모두 기분이 좋은 냄새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이리 들떠있는 걸까. 시리우스는 가만히 생각했다. 그래, 막 나갈 참에 바닥을 쓸어내던 W.H가 했던 말이 화근이었다.

 

  '오늘따라 들떠 보이십니다.'

 

  그 한 문장. 한 문장이 시리우스를 곰곰이 생각하게 하고 있었다.

  혹시, 어쩌면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 치부하며 시리우스는 다시금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니, 이번에는 옅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정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오늘의 정원은 달착지근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런 향도 썩 괜찮다고 생각하며, 시리우스는 새하얀 탁자에 앉아있던 덜스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게나. 여전히 자네의 정원은 향기롭군."

  "칭찬 감사합니다! 시리우스님도 여전히 멋지십니다~!"

 

  덜스는 뿌듯한 얼굴로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미리 준비해놓은 찻주전자를 들어 시리우스 앞에 있는 찻잔에 조심히 따랐다. 조금 쌀쌀해진 날씨 탓에 신경을 쓴 건지 흘러내리는 차에서는 희뿌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원에서 느껴지는 달착지근한 향은 이 차 덕분인지, 차는 달콤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한 모금 드셔 보시겠습니까~?"

 

  수긍의 의미로 희미하게 웃어 보인 시리우스는 한 김 식은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분명 당분을 쓰지 않았을 텐데도 느껴지는 달콤함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라 생각하며 덜스에게 물었다.

 

  "이 차는 무슨 차인가? 달콤한 향이 꽤 좋네만."

  "수국차입니다! 달콤한 맛이 특징이죠!"

 

  따뜻한 차와 직접 만든 듯한 다과가 있는 자리에서 둘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이를테면, 수국차를 응용한 새로운 메뉴라던가, 혹은 시시콜콜한 이야기(주피터의 험담 아닌 험담이나, 그동안 바를 운영하면서 있었던 일 등)가 대다수였다.

 

  "그러고 보니 자네의 식물을 이용하고 나서 매출이 늘었네. 좋은 평도 많이 받고 말일세."

 

  이게 다 자네 덕분이야.

  시리우스는 말을 마치고 빙그레 웃어 보였다. 칭찬이 좋으면서도 살짝 부끄러운지, 덜스의 하얗던 두 뺨은 어느새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었다.

 

  "제 덕분이라뇨. 사랑스러운 식물들이 잘 자라준 것과 시리우스님께서 솜씨가 좋아서입니다!"

 

  서로를 훈훈하게 칭찬하는 것은, 몇 번을 해도 절대 물리지 않았다. 이로써 인해 두 사람 간의 사이가 더욱더 돈독해진다면 또 모를까. 화기애애하게 칭찬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그만 덜스의 팔이 연회색의 찻잔을 툭 건드렸다. 찻찬은 힘없이 제 안에 있던 차를 쏟아냈고 그것을 한발 늦게 알아챈 덜스와 시리우스는, 평소보다 허둥대며 찻찬과 쏟아진 찻물을 수습하려 애썼다.

  분명 자신의 바에서 주류를 쏟았을 때는 이리 허둥대지 않았던 것 같은데.

  분명 요일들과 함께한 티파티에서 차를 쏟았을 때는 이리 허둥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쏟아진 찻물은 평소와 다른 행동에 대해 생각할 만큼을 조금도 주지 않았다. 흙바닥으로 쏟아진 찻물은 흙 알갱이 사이사이로 촉촉이 스며들었다. 다행히도 떨어진 찻잔을 줍고, 찻잔에 묻은 흙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는 것은 그리 많은 시간을 잡아먹지 않았다.

 

  "이런, 찻잔에 실금이 가버렸네요."

 

  꽤 아끼던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찻잔을 주워들은 덜스가 아쉽다는 투로 말했다. 시리우스는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덜스의 찻잔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았다. 덜스가 정원용 호스로 다시금 찻잔을 닦아내자마자, 시리우스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내 바에 비슷한 잔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자네가 괜찮다면 그걸 줘도 되겠나?"

 

  투명하게 반짝이는 여러 모양의 잔 중, 혼자서만 부드러운 회백색을 띠고 있는 잔이 있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사놓고는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먼지가 부옇게 쌓이지도 않고 언제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진열장을 지키고 있는 그런 잔이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래,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구매했었던 것 같다. 싱그러운 녹색 머리칼의…

 

  "… 시리우스님?"

  "아, 미안하군. 내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네."

 

  걱정스러운 듯이 물어보는 덜스에게 시리우스는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누군가의 추천을 받은 것은 분명한데, 그 '누군가'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오른손을 들어 눈가를 꾹꾹 누르고는 하던 얘기를 계속해 나갔다.

W. 초연 - 덜스

D. 리디아 - 시리우스A

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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